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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야치] 선악과 ①야치른(谷地受け)/스가야치 2015. 12. 26. 23:06
* 약NTR의 표현이 있습니다.
* 캐릭터 붕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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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관계가 ‘틀렸다’는 것은, 그러니까, 타인이 보기에 ‘윤리’에서 어긋났다는 것은 무척이나 잘 깨닫고 있는 부분이었다. 적어도, 스가와라는 그럴 터였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제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는 서로의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관계를 멈출 수가 없었다.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제하면 제할수록, 더욱 그것을 갈망하는 심리 상태가 되는 것이다. 몇 번이고 그녀를 잊으려 했고, 선을 그으려 했다. 연락을 끊기까지 해보았지만, 결국 스가와라는 다시 그녀를 찾았고, 더욱 그녀를 깊이 탐했다. 마치 선악과를 탐한 이브를 탐했던 아담과도 같이.
*
그녀는 스가와라보다 두 살 정도 어린 후배로 스가와라가 다니는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처음 환영회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앳된 숙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선배들의 말장난에 얌전히 웃으며 소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그녀는, 스가와라와 눈이 마주치자 일순 자신의 고혹적인 여성의 그림자를 내 비춰 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스가와라는 상상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가 나이가 들어 고혹적인 모습을 꽃 피운 때를.
“스가, 시미즈는 아직이야?”
“어? 아, 어?”
그녀와의 첫 만남을 상상하던 그 순간 대학 동기인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스가와라를 과거에서 현실로 끌고 돌아온다. 그가 무언가 질문을 한 것 같았지만 과거를 회상하던 스가와라가 제대로 그 말을 들었을 리 만무했다. 스가와라는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미안,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다.’ 그러자 사와무라의 얼굴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이 띄어 올랐다가, 곧 사라진다. 그는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사사로운 것에 깊게 마음을 두지 않는 것에 스가와라는 자주 자신과 비교해 그의 그런 점을 동경하고는 했다.
“시미즈는 아직이냐고 물었다. 임마, 정신 똑바로 차려. 새 학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래? 그래가지고 장학금, 타겠어?”
“아아, 뭐. 그러게. 열심히 해야지. 하하.”
“시미즈랑 약속했다며, 이번 학기는 꼭 장학금 타기로.”
그의 입에 계속 오르는 ‘시미즈’라는 이름이 스가와라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는 것을 사와무라는 알기나 할까? 스가와라는 그가 부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도록 가슴에 손을 얹으며 대답했다. 평소와 같은 웃는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얼굴 근육에 힘을 주자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응, 꼭 받아야지. 이번에는.’ 그 모습에 사와무라는 의아한 표정을 내보이며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곧 교수가 들어와 출석 호명을 위해 제 자리로의 착석을 권했으므로, 사와무라는 입을 도로 다물고는 스가와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기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 지 스가와라는 대충 짐작이 갔다.
‘시미즈가 걱정할 짓은 그만해.’
욕지기가 치민다. 스가와라는 가슴에 얹었던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지금이라도 손을 들고 화장실로 뛰쳐나가 방금 구겨 넣었던 점심들을 게워내고 싶었다. 감이 좋은 사와무라였다. 자신과 시미즈 사이에서 풍기는 위화감에는 꽤 전부터 눈치채고 있을 것임에 분명했다. 뭐 정확한 사정이야 모른다손 쳐도 어느 정도는 직감하고 있을 것이었다.
스가와라가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게다가 사와무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미즈에게 짝사랑 하고 있었다. 딱히 감이 좋지 않은 스가와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시미즈에 대한 마음은 꽤나 열렬히 티가 났다. 물론 티를 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티가 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란 것은 그런 것일 거다. 자신이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그런 것이겠지. 스가와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강의의 내용 따위는 이미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시미즈가 아직 교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스가와라는 깨닫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
“스가.”
“으음.”
어느 샌가 강의 도중에 잠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뜬 스가와라의 앞에 사람의 형체가 뿌옇게 나타났다. ‘누구지?’ 멍한 머리를 천천히 회전시켜본다. 당연히 그 앞에 서 있는 건 사와무라 일 터였지만, 잠에서 깬 탓인지 멍한 머리는 그런 간단한 결론을 도출해내기까지 꽤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으음, 다이치?”
“얼씨구. 잘 주무셨습니까? 스가와라 코시 상.”
“하, 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스가와라에게 차가운 눈빛을 쏴 보이던 그는 곧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시미즈는 어떻게 된 거야?”
“아, 어?”
“시미즈, 오늘 수업에 안 나왔어.”
“…….”
어색한 침묵. 스가와라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애당초 그가 다른 마음을 품은 이후, 시미즈와의 연락은 극도로 줄어 어지간히 급한 문제가 아니면 딱히 서로 간에 연락은 일절 없었던 지라 시미즈가 왜 학교를 결석했는지에 대해서는 스가와라도 짐작 가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사와무라가 원하는 대답은 스가와라에게서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이걸 당당히 선포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스가와라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문 채 그의 눈치만 살필 수 밖에 없었다.
“……하아, 스가. 어지간해선 내가 다른 사람의 연애에 이러쿵저러쿵,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너 근래에 좀 심해진 거 알지?”
“……아아, 응. 뭐. 그렇네. 미안.”
“야, 너 임마! ……하아. 됐다. 열 낸다고 될 일도 아니고. 시미즈한테는 내가 연락해 볼 테니까.”
“……응. 미안, 다이치.”
“……됐다.”
질린 표정을 지은 사와무라는 그대로 등을 돌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홀드 키를 눌렀다. 그의 어깨 너머로 핸드폰 액정이 보였다. 메신저 앱의 실행 화면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마 시미즈에게 연락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사적인 연락을 하는 남자(인 친구)의 모습. 하지만 그런 모습을 봐도 이제는 별 감흥도 들지 않는다. 스가와라는 천천히 가방 지퍼를 열고 책상 위에 널브러진 전공 서적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스가.”
한 동안 핸드폰을 터치하며 입을 다물고 있던 사와무라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스가와라를 부른다. 그 뒤에 올 말이 어쩐지 예상이 되는 건 왜일까? 스가와라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가방을 챙기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
“주제 넘은 말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면 시미즈는 그만 놔 주는 게 어떠냐?”
“……음.”
가방을 다 챙긴 스가와라는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와무라를 지나치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정말 주제 넘은 말이네. 사와무라.”
*
강의실을 빠져 나온 스가와라는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홀드 키를 눌러 잠금을 풀자, 몇 건인가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등의 알림이 보였다. 물론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스가와라는 그를 모두 무시한 채 전화기 아이콘을 터치해 익숙하게 몇 자리의 번호를 치고는 발신 아이콘을 터치했다.
뚜르르, 뚜르르.
몇 번인가의 신호가 가고 곧.
뚝.
하는 조금 묵직한 소리와 함께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스가와라의 귀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여보세요?”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다. 귀에 미각이 있다면 다른 어떤 디저트를 가져다 놔도, 아무리 그 디저트가 제 혀를 녹게 한다 해도, 아마 이에 겨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큼, 큼. 몇 번 목을 푼 스가와라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알린다.
“여보세요, 히토카?”
그녀, 히토카는 그의 목소리에 수줍게 웃는 소리를 내며 ‘네, 선배님.’ 하고 대답했다. 아마 지금쯤 두 볼을 붉게 상기시키고 있을 게 틀림 없었다. 히토카는 곧잘 빨개지니까. 특히 스가와라와 어울릴 때는 더욱.
‘선배님 말고, 내가 어떻게 부르랬지?’ 스가와라가 짓궂게 묻자, 히토카는 곤란한 듯 말을 더듬었다. ‘아, 그, 그치만…….’ 그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계단을 내려와 로비에 다다랐다. 로비에 커다란 벽면 거울이 있던 것을 깨닫고 스가와라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본다. 자세를 잘못 잡고 잔 탓인지 머리가 부자연스럽게 눌려 있었다. 손을 들어 눌린 머리를 정리하던 스가와라는 수화기 너머 입을 다물고 있는 히토카를 다시 한 번 다그친다.
“응? 제대로 불러야지.”
“으응…….”
힘 없는 신음소리가 그의 귀 속을 울린다. 그런 소리를 내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소리가 짐짓 관계 중의 그녀를 연상시켜서 스가와라는 아랫도리에 피가 쏠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위험하다. 지금 당장 히토카를 만나 제 품 안에 가둔 채 입이 맞추고 싶어 참을 수가 없다. ‘히토카, 지금 어디야?’ 스가와라의 질문에 히토카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더니 곧 질문에 답한다.
“저어, 오늘 조별 과제가 있어서, 쿠로오 상의 집에…….”
최근 들어 익숙해진 이름이 히토카의 입에 오르자, 순식간에 아랫도리에 쏠렸던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후. 히토카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숨을 내쉬고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아, 그렇구나.’ 하고 웃는다.
쿠로오, 그러니까 쿠로오 테츠로는 히토카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려 마치 자신의 지인 마냥 친숙해진 이름으로, 히토카와 같은 학과에 재학 중인 그녀의 2년 선배(자신과는 동갑내기가 되는 것이다.)였다. 어찌되었든 그는 히토카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해 주는 모양으로 자주 히토카의 곁에 있는 것을 (주로 그녀의 입에서)듣게 되는데, 한 번도 그와 마주한 적은 없었다. 히토카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거의 학교 밖에서뿐이기에 그런 것이리라.
아무튼 스가와라는 그의 존재가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선점한 암컷에게 들이대는 다른 수컷을 반가워 할 수컷이 지구 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싶지만. 그렇다고 히토카에게 ‘그 놈이랑 어울리지 마.’ 라고 할 정도로 스가와라는 어리지 않았다. 그런 짓은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들고, 곧 다툼의 불씨가 된다. 그것은 어렸을 적 몇 번인가 시미즈와의 시행 착오 끝에 얻은 큰 깨달음이었다. 그다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던 시미즈를 통제 불능으로까지 이끌었던 짓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오싹한 경험이었다.
“아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은 만나는 거 무리?”
일순 떠오른 시미즈에 관한 기억에 찜찜한 기분을 밀어내며, 머리를 다 매만진 스가와라가 거울에서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 히토카는 조금 간격을 둔 후, ‘아니요, 한 시간 정도 후면 얼추 끝날 거 같은데요….’ 하고 조금 자신 없이 대답한다. 아직 자신의 기량을 확실히 모르는 지라 과연 자신이 정해진 시간 안에 과제를 다 달성할 수 있을 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리라. 그 자신에게(물론 상대에게도) 서툰 모습이 그녀의 매력 포인트라면 매력 포인트였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스가와라는 작게 웃으며, ‘그래.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끝나고 연락해.’ 하고 그녀를 신경 써주는 말투로 답했다. 히토카는 ‘아, 네! 알겠어요. 스가, 아, 아… 코, 코시 상….’ –뚝. 사람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일까. 결국 끝에는 자신과의 약속을 수줍게 지켜주는 히토카의 모습에 스가와라의 입 꼬리는 귓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지금 당장 만나서, 품에 가두고, 입을 맞추고, 가슴을 애무하고, 귀를 깨물고….
“정말 죽을 거 같네.”
히토카와의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빤히 쳐다보며, 스가와라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솔직한 말로 지금 당장 히토카를 보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물론 여러 의미로 말이다. 히토카와 만날 수 있게 되기까지 한 시간……. 그런데, 잠깐. 아까 방금 히토카, 쿠로오 상의 ‘집’ 이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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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야치] 선악과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①
written by WO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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