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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키야치야마] 들려주고 싶은 것은야치른(谷地受け)/etc 2016. 1. 7. 16:21
말은 어렵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러니까 말은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내 놓는 것은 큰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다. 언변이 좋지 않으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반되는 뜻으로 상대방은 받아들이고 만다. 물론 말 속에 담긴 진심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쉽지 않다. 상당한 운이 없으면 평생 그런 사람과는 조우하지도 못한 채 오해와 비약으로 점철된 인간 관계를 이어나가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츳키, 같이 돌아가자?"
츠키시마의 경우는, 어느 쪽이냐 하면 그 '운'이 상당한 쪽이었다. 어렸을 적 우연히 만나게 된 야마구치는, 자신이 어떤 가시 돋힌 말을 해도 가시 속의 알맹이를 알아 주었다. 그랬기에 그는 야마구치만 있다면, 솔직히 말해 다른 인간 관계는 0(ZERO)여도 상관 없었다. 그랬을 터였다.
"……야마구치 딱히 늘 그렇게 권하지 않아도, 늘 같이 돌아가고 있는데."
"하하하, 그러게!"
그래. 그랬을 터였던 츠키시마에게는 최근 고민이 생겼다. 그 고민이라하면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엑, 그 츠키시마가?'라며 동공을 확장시킬 것으로, '그' 츠키시마가 야마구치 외에 전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대상이 '이성'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고민은 나름 극비라면 극비로, 츠키시마는 이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입을 연 적이 없었다.
그 야마구치에게도 말이다.
나중에 야마구치가 안다면 분명 울상을 지으며, '츠, 츳키이… 너무해에….' 라고 우는 소리를 내겠지만. 그러나 츠키시마, 자신은 그 고민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물론 다른 사람들 앞이 아니더라도) 입에 올릴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렇다면 이 고민이 야마구치에 귀에 들어가는 일은 있을 리 만무한 것이었다.
최근 새로 입부한 '야치 히토카'가 신경 쓰인다는 츠키시마의 고민은.
* * *
카라스노의 연습량은 많으면 많았지, 적다고 할 연습량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냐고 굳이 따진자면 나름의 수준인 강호 고등학교들도 혀를 내두를만한 정도였다. 그로 인해서 늘 연습은 해가 다 져 갈 시간에야 끝날 때가 많는데, 그마저도 춘고를 준비하는 요즘에 들어서는 그 양이 더욱 방대해져 버렸다. 학교를 둘러싼 주변이 새카매지고서야 겨우 연습을 끝내고, 정리를 시작하는 실정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하아. 하아."
최근 저녁 노을을 보며 귀가한 적이 얼마나 될까. 츠키시마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문득 생각했다. '진짜,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다들 고작 부활동에 뭘 이렇게 진심이 되는 건지 츠키시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딱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 츠키시마 군. 수고하셨습니다!"
"……아."
어느 새 옆으로 온 그녀가, 야치 히토카가 자신에게 타올과 드링크를 건낸다. 그녀 특유의 함박 웃음을 얼굴에 잔뜩 피우며. '─연습에 어울리느라, 저도 힘들텐데. 어떻게 이렇게 웃을 수 있지.' 츠키시마는 아무 말 없이 건내진 타올과 드링크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라는 말이 입 안에 맴돌긴 했지만, 애써 -꿀꺽. 삼켜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타박하지 않는다. 보통의 여자아이라면 이 쯤에서, '츠키시마 군은 다른 사람에게 예禮를 차리는 법을 모르는 거야?' 라고 한 마디 날릴텐데.
"……츠키시마, 조금은 야치 상한테 감사 인사 하라고?"
이 카라스노 고교 남자 배구부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 범절 건으로(특히 야치에 관한 건으로) 자신에게 타박을 날리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 같은 학년의 미들 블로커인, '히나타 쇼요' 였다.
"……."
"뭐야, 임마. 뭘 그렇게 노려봐! 해, 해 보자는 거냐! 임마!"
자신과 같은 포지션인 그는 그럴 배짱도 없으면서 곧잘 허세를 부리고는 한다. '그보다, 내가 왜 감사 인사를 해야 되는데…? 얘는 그냥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잖아.' 늘 그런 꼬인 생각이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른다. 순수하게 '아아, 미안! 야치 상, 언제나 고마워!'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한 번도 없지만.
"난 괜찮아, 히나타 군. 아, 히나타 군도 수고했어. 자, 타올!"
"아, 땡큐! 매일 고마워. 야치 상이 와 준 덕분에 정말 도움 되고 있어."
"그, 그런, 나 별로 그렇게 도움 같은건…….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면 기쁘네!"
살짝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미소 지어주는 야치를 보자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솔직한 성격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아, 그러고보니까 오늘 얏쨩 데려다 주는 당번 누구였더라?"
흠칫. 자신의 이름이 불러진 야치가 움찔 거리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이름을 부른 카라스노의 주장, 다이치를 바라본다. 히나타도 역시 그녀를 따라 다이치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카라스노 배구부에서 가장 자택이 먼 사람을 꼽으라하면 단연 야치로, 연습이 끝나고 그녀가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넘는 시간대가 되어 버리고 말 정도로 그녀의 집은 꽤 먼 거리에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카라스노 고교는 시내의 중심지보다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야치의 집은 그 반대로 시내의 중심지에 가까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여러모로 뒤숭숭한 사건들도 연달아 화자 되고 있는 바, 연습이 이렇게 늦어지는 날에는 적어도 사람의 왕래가 있는 곳까지 야치를 데려다 주는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야치를 바래다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늘은 분명…… 아! 오늘 스가 상이었잖아."
"엑, 스가 상이라면 오늘 집에 일이 생겼다고 먼저 귀가했잖아."
"그럼 오늘 당번이 비는 거야? 이를 어쩐다."
"아, 아니, 저, 저는 혼자 돌아가도 괜찮으니까요…!"
선배들의 곤란한 표정을 읽은 야치가 자신은 괜찮다며 말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괜찮을리가 만무했다. '……귀찮아. 그냥 아무나 정해서 데려다 주면 되는 거잖아.' 대충 땀도 닦고, 숨도 고르고, 수분도 섭취했겠다 츠키시마는 더 이상 체육관에 남아 있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였다. 선배들이 곤란해하던, 야치가 곤란해하던 빨리 씻고, 옷 갈아입고 집에나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럼 저, 오늘은 제가 야치 상 데려다 줄게요."
"에, 엣…… 야, 야마구치 군!"
의외의 지원자에 놀란 츠키시마는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절대 평소라면 이런 일에 나설 리 없는 야마구치, 그가 당당하게 '야치를 데려다주는 임무'에 지원한 것이었다. '아니, 잠깐…… 애초에 집 방향도 반대잖아.' 자신과 야마구치의 집은 분명 시내 쪽과는 반댓쪽 주택가에 있을텐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사라도 한 건가? 야마구치네 집.'
"……!"
기가 찬 츠키시마가 굳어 있던 몸을 피며 야마구치에게 한 마디 쏘아주기 위해 고개를 틀어 야마구치를 바라보았지만, 츠키시마는 그에게 아무 말도 쏘아주지 못했다.
나름 긴 인연이라고 자부하던 츠키시마 또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의 얼굴이, 츠키시마의 입을 틀어 막았기 때문이었다.
살짝 상기된 볼, 당당히 번쩍 든 손과 다르게 살짝 머뭇거리는 눈, 그럼에도 굳은 결의마저 느껴지는 눈동자.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넌 누구야?' 라고 물을 뻔 했다. 그 곳에 서 있는 건, 확실히 야마구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야마구치였지만, 야마구치가 아니었다. 여지껏과는 다른 그 모습이, 왜인지, 츠키시마의 가슴 속 깊은 곳을, 쿵. 쿵. 쿵. 두들기는 것 같아서, 츠키시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자신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츳키, 츳키!'하고 자신을 부르던 '그'는 이미 그 곳에 없었다. 어느 새, 남아있는 것은 츠키시마 혼자라는 것을, 야마구치는 자신을 지나쳐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츠키시마는 그제야 눈치 챘다.
애당초, 왜, 왜.
왜 하필, '그 애'야.
빙수를 한 번에 삼켰을 적 처럼, 찌잉 하고 머리가 울려온다. '아아, 그래, 알았다 이거야.' 츠키시마는 관자 놀이를 짓누르며, 크게 숨을 들이쉬고, 무겁게 내려 앉았던 입을 힘겹게 떼내어 목소리를 냈다.
"저도, 같이 갈게요."
* * *
"아, 아하하…."
"……."
"……."
"으, 으으……."
야치는 곤란해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을 데려다 주겠다며 솔선수범 나선 두 사람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주변 공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있다. 안 그래도 타인, 특히 키가 큰 이성들에게는 약한 면이 있는 야치였는데…… 두 사람이 이래서야 귀갓길이 고문과도 같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기 위해, 되도 않는 농담 등을 몇 가지 던졌는데 두 사람은 아주 보기 좋게 그를 무시하고 발만 놀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체, 두 사람다 무슨일인거지….' 아까 전, 체육관에서만해도 두 사람은 평소와 다름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두 명에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뭔가 한 소리라도 할 법 했지만, 야치에게 그런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 야치다. 자신을 데려다주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아마 두 사람을 탓한다거나 그런 건 생각지도 않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저, 저기!"
그래도 역시 친구끼리 이런 건 좋지 않잖아. 그렇게 생각한 야치는 어떻게든 두 사람의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야치의 목소리에 흘끗, 몇 발자국 앞서가던 두 사람이 몸을 틀어 야치를 바라본다. '읏!' 두 사람의 시선에 움찔거리며 '괘, 괜히 불렀나……' 하고 약한 마음이 되어 버리는 야치였지만, 곧 고개를 붕붕 좌우로 흔들고는 굳게 다짐한 표정을 하고 입을 여는 것이었다.
"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치, 친구 사이끼리, 싸, 싸움한 건 그, 그 때 그 때 풀고, 사, 사, 사이 좋게 지내자아앗↗!"
'히, 히익!' 야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힘을 주어 말하는 바람에 마지막 부분에서는 삑사리까지 나 버렸다. 쥐 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어…….
"……풉."
"……에."
"푸하하, 미안, 미안. 야치 상. 걱정 끼쳐 버렸네."
야마구치가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며 야치에게 사과했다.
"걱정마, 싸움 같은 거 한 거 아니니까!"
"저, 정말?"
야치의 말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야마구치. 야치는 그의 말에 굳은 표정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칠칠치 못한 웃음을 흘리며 '그, 그럼 다행이다아….' 하고 안심하는 것이었다.
'……뭘 그딴 걸 신경 쓰고 있는 거야.' 야마구치의 말에 안심하는 야치를 보며 속으로 볼멘 소리를 냈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분명 이런 소리를 하면 그 커다란 눈에서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려댈 게 분명하니까. 어디 사는 누구씨와는 다르게, 그녀는 자신의 가시 돋힌 말의 속내를 알아주지 못했다. 그게 뭔가 분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아니, 아니, 서운 할리가 없다. 서운 할리가. 서운 할리가, 없는데…….
"아, 나 여기까지면 되니까!"
야치의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자신의 발 끝에서 시선을 끌어 올려, 야치를 바라봤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어느 새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한 것이었다. 야치가 아직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두 사람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내일 학교에서 보자!"
마침 정류장으로 들어온 버스에 올라타며, 작별 인사를 한 야치는 버스 좌석에 앉아서도 창문 밖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손 인사를 해 보였다. 그에 야마구치는 웃으며 똑같이 손 인사로 화답했지만, 츠키시마는 교복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고개만 까딱 거리고 마는 것이었다.
"부릉─."
그렇게 야치를 태운 버스가 정류장을 느린 속도로 빠져 나갔다.
버스가 시야에서 멀어지고, 떠나간 버스가 남긴 매캐한 매연도 공기 중에 흐려질 무렵. ─찌르르. 찌르르. 여름 벌레들의 소리만이 흐르던 공기 중에, 야마구치의 목소리가 울렸다.
"츳키."
"……."
대답도 않고, 야마구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야마구치 또한 츠키시마를 부르고 있지만, 그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저 오로지 제 앞들만 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나, 있지. 야치 상, 좋아해."
'누가 그걸 모르겠냐. ……멍청이.'
츠키시마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서?' 라는 그 나름의 대답이었다. 야마구치가 그를 눈치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츳키가 야치 상 좋아하는 것도, 나, 알고 있어."
"……무, 무슨!"
갑작스런 야마구치의 고백에 놀란 토끼 눈이 된 츠키시마가 척 보기에도 동요가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을 하려 했지만,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야마구치의 큰 목소리에 힘 없이 묻히고 만다.
"숨기려고 해도, 소용 없으니까! 츳키의 몇 년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다 알고 있었으니까! 츳키가 야치 상 좋아한다는 거!"
"아, 아니, 그러니까…!"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해서 츳키랑 붙으면, 나, 이길 자신 전혀 없지만!! 얼굴도 그렇고, 키도 그렇고, 운동 실력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나 전부 츳키한테 밀리는 거 알고 있으니까!! 내 주제 정말 확실히 아니까!! 근데, 그래도, 그래도!! 나, 나, 진짜로, 야치 상 만큼은 츳키한테도 안 질만큼 좋아하니까!! 처음 봤을 때 부터 좋아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번만은 나도 양보 못하니까!!! 안 질거니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을 더 하라는 걸까. 츠키시마는,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 앞에서, 입도 뻥끗 할 수 없었다. 어찌 할 수 있으랴. 츠키시마 자신은 아직 자신의 마음 조차도 제대로 정의 할 수 없는데. ……뭘까, 이 패배감은.
"하아, 하아… 그, 그럼, 내일 보자. 츳키!!"
자신의 속내를 츠키시마에게 모두 부딪힌 야마구치는 여느 때보다도 시원스런 얼굴로 몸을 틀어,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찌르르. 찌르르.
"……."
어느 새, 여름 밤의 정류장에 남은 것은, 여름 벌레와, 찌는 듯한 열기와, 붉게 상기 된 얼굴을 구기며 주저 앉은 츠키시마 뿐이었다.
* * *
그냥 늘 그랬듯이 포기하면 되잖아.
어차피 귀찮은 감정일 뿐이잖아, 이것도 저것도.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늘, 그랬듯이.
"타앙!"
"─윽!"
"츠키시마! 반응이 둔하다!"
"……하아. 하아. 으, 후우."
"연습 때 잡 생각 가지고 움직이지 마! 부상으로 이어진다!"
코치의 큰 소리에 츠키시마의 눈이 뜨였다. 문득 올려다 본 시야에 네트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야마구치가 비쳤다. ─젠장. 그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튼다. ─젠장. 젠장. 어제의 기억이 엉망진창으로 이어졌다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한다. ─젠장. 젠장. 젠장. 어째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한 점의 비틈도 없이 곧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는 거야.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나는 못하는 걸,
"타앙!"
"─윽!!"
"츠키시마! 정신 똑바로 차려!"
……왜 너희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거야.
……………………
………………"……퍽!!"
"…윽!!"
"츠키시마!"
"츳키!!!"
"…츠, 츠키시마 군!!"
그 찰나의 순간. 어제의 일로 집중이 흐트러 져 있던 츠키시마는 결국 자신에게 날아온 볼을 피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리를 맞고 힘 없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팀원들의 목소리가 차례차례 오버랩되며, 흐려지는 정신의 와중에, ─새빨개진 얼굴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너를 본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 * *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으로 처음에는 자신의 방인 줄 알았지만, 곧 이어 풍겨오는 갖가지 약품 냄새 등에 그것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후두부에서 강한 통증이 찾아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신음이 흘러 나왔다.
"츳키,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익숙한 친구의 얼굴이 눈에 담겼다.
"……야마, 구치……."
"연습 중에 날아온 공에 맞아서 쓰러지다니. 오늘따라 츳키 답지 않네. 제대로 집중, 못하고 있잖아."
"…딱히, 별로…."
곧은 눈에 눈이 마주쳐서,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그의 눈을 피해버렸다. 요즘의 야마구치는, 자신이 알던 야마구치와는 너무 갭이 크게 다가와 어색하게 느껴졌다. 무엇이든 다 알고, 꿰뚫어보는 것 같아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불쾌함. 요즘의 야마구치와 함께 있으면 가지게 되는 감정 태반이 불쾌함이었다. 그렇게나 편하던 오랜 친구는 이제는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기본 상냥하지만, 때때로 가시 돋힌 말을 뱉고, 그것이 츠키시마의 가슴에 푹. 푹. 박혀온다.
"……어제,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러는 거야?"
"……."
"츳키, 아니, 츠키시마. 나는 네가 제대로 네 감정을 부딪혔으면 해."
야마구치는 이 부분에서 작게 숨을 들이쉬고는, 눈을 내리 깔았다. 그 모습이 츠키시마에게는 야마구치가 여지껏의 자신을 끊어내는 모습처럼 보였다.
"네 감정에 솔직해져서, 타인에게 제대로, 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부딪혔으면 해. 있잖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부딪힌다는 건 말이지."
서서히 고개를 든 야마구치의 곧은 눈이, 츠키시마의 탁한 눈과 마주친다.
"전혀 꼴 사나운 일이 아니야, 츠키시마."
알아. 누가 모르겠어. 어제, 그 밤, 정류장에서 자신에게 있는 힘껏 감정을 부딪히던 야마구치는 전혀 꼴사납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그래, 그만큼 멋진 모습을 한 사람을 자신은 여지껏 인생을 살며 본 적이 있던가.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을 보게 되는 일은 없다고 쳐도 될 정도로, 그 날의 야마구치는 정말로 멋있었다. 남자인 자신도 살짝 두근거릴 정도로.
……작고 볼품 없어 보였던 조약돌은, 던지는 방법에 따라서 잔잔한 수면에 파장을 일으키고, 잠들어 있던 감정을 흔들어 깨울 수 있다.
"나, 야치 상에게 고백할 거야."
"……."
"그러니까, 츠키시마도, 무서워 하지 말고, 제대로 부딪혀줘."
그 말과 함께 상냥한 미소가 야마구치의 얼굴에 번져간다.
"상처 받는 걸, 무서워 하지마. 츠키시마."
이것 봐. 전부…… 꿰뚫어보고 있잖아.
* * *
"아, 츠키시마 군! 다친 곳은 어때?"
다음 날, 체육관에 들어온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허둥지둥 달려와 안부를 묻는 야치를 보자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뻔 한 사실에 놀랐다. '나는, 이렇게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나?' 어제의 야마구치의 말에 의해서, 마치 마법에 걸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은 아주 강력해서 저도 모르게 츠키시마는 입을 열고, 자신이 품은 감정의 작은 조각을 뱉어내게 되는 것이었다.
"……아, 응. 그, 저─"
"응?"
"그, 고, 고, 마… 워. ……야치 상."
"……에."
"……."
"……헤, 헤헷. 괜찮으면, 다행이다!"
야치는 여즉까지와는 조금 다른 츠키시마의 언동에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누구라도 보는 즉시 안아버리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행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츠키시마는 자신의 붉어진 얼굴에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길 바라며, 몸을 돌려 스트레칭을 하는 1학년들 틈에 섞인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친다. 처음으로, 서툴게 부딪힌 마음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해졌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화답으로 사랑스러운 미소를 받았다면, 그 기쁨은 더할나위 없이 배가 된다. 설렘. 고작 십 몇 년의 짧은 인생 중 가장 기뻤던 날을 회상하라 한다면, 츠키시마는 주저 없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꼽을 것만 같았다.
제대로, 조금 더 제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해서, 너와 이어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한다.
분명 자신은 이다지도 서툴어서, 너를 아프게 할 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 같은 녀석보다는 히나타나 야마구치 같은 녀석들이 너에게는 더 잘 어울릴 지 모른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줄지 모른다. 나는, 너를 상처주지만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너에게 욕심이 난다. 조금 더, 너와, 이런 감정들을 크고, 작게 부딪히면서, 함께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고백……."
어제의 야마구치의 선언이 생각나,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려 본다. 고백.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하는 것. 그러니까, 츠키시마는 자신의 이 마음을, 야치 히토카에 대한 이 마음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서로 이어질 수 있다면─ 지금은 그 이상으로 바라는 게 없다.
'야마구치, 고백, 한다고 했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그는 자신의 감정을 부딪히는 것일까. 자신이 알아서 뭔가 될 것도 아니고, 그걸 알아내 쫓아가서 고백을 방해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순수하게 호기심은 일었다.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밝히고, 부딪히는가. 이 마음을 말로 표현한다면,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걸까. '좋아해' 한 마디로 축약 될 수 있는 마음인걸까? 이 마음은.
'……좋아해.'
야마구치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기뻐할까? 아니면 울상을 지을까. 조금 기분 나빠할지도. 아니, 아니, 서툰 너니까 아마 당황하며 땀을 흘리며, 움찔 거릴 게 틀림 없었다. 그럼, 내가 너에게 '좋아해'라고 말하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감정을 내비칠까. 의외로, 기뻐할지도 몰라. 의외로, 같은 마음이라서 나에게 안겨 기쁨의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 아니면, 아니면, ─곤란해 할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을 전하는 게, 감정을 부딪히는 게, 너무 두려워서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지금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감정을, 부딪히고 싶다. 츠키시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순수하게, 어떤 말이 되든, 흔해 빠진 단어들만 나열하게 된다 해도, 그럼에도 내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너에게 닿게 할 수 있다면. 돌아오는 네 반응이 어떤 반응이라 해도, 역시 전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야마구치의 마법일까? 아니면.
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일까?
* * *
"오, 오늘도 데려다 줘서 고마워! 츠키시마 군. 매번, 폐만 끼치네."
"……뭘. 당번이라서 그런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마."
시험 기간이 코 앞으로 다가와서, 부활동이 평소보다 빨리 끝난 지라, 현재 시각은 막 저녁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즈음이었다. 딱히 그렇게 늦은 시각도 아니어서 야치 혼자서 하교해도 문제는 없었겠지만, 끔찍이도 매니저를 아끼는 3학년 선배들의 명에 의해서, 부활동이 일찍 끝나더라도 그녀를 정류장까지 안전히 바래다 주는 당번 일은 평소와 같이 행해진 것이었다.
"츠키시마 군은, 안 그런 것 같아도, 무척 상냥하구나."
"……별로, 딱히."
"그런가? 헤헤. 하지만 상냥한 걸."
저녁 노을이 져서 다행이다. 아니면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야치에게 들켰을 지도 모른다. 두근. 두근. 아아 심장 소리가 시끄럽다. 진정하고 싶어도, 진정이 되질 않는다.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뜨자, 아까 전보다도 더욱 선명히 주변의 것들이 눈에 들어 온다.
강을 끼고 나 있는 좁은 길목.
두 사람이 걷기에 아슬아슬한 폭.
닿을 듯 말 듯한 서로의 거리.
노을에 의해서 붉게 물든 하늘이.
노을을 반사해 붉게 흐르는 강물이.
철컹. 철컹. 강둑을 가로질러 난 철길을 건너는 기차 소리가.
어디선가 불어온 미지근한 여름의 바람이.
노을빛을 반사하며 바람에 날리는 너의 머리칼이.
바람을 타고 맡는 너의 향기가.
머리칼을 정리하는 네 가는 손가락이.
익숙한 발라드를 흥얼거리는 네 목소리가.
반짝.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아서.
내 안이 너만으로 가득 차서, 포화 상태가 되어서, 더 이상 품고 있을 수가 없어서, 넘쳐 흘러서, 나는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저녁 노을에 빛나는 꽃이, 예뻐서 말로 표현해 보고 싶었던 거야. ─깊은 의미는 없으니까.
"……좋아해."
너는 그저 그렇게 있어주면 되니까. 부디 내게 마음을 줘. 부탁이야.
"……좋아해, 히토카."
눈물샘에서 흘러나온 이 마음을, 그대에게도 전해보고 싶을 뿐. 그저 그 뿐이니까.
아아, 너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째서인지, 눈 앞이 뿌얘져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언제까지고 나는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감정을 부딪히지 않고, 그저 무기력하게, 죽은 것처럼, 내 감정을 죽이고, 무시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네가 나에게 웃어줬는 걸. 네가 나를 보며, 내 이름을 부르고, 웃어줬는 걸.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그런 건 불가능하잖아. 불가능, 하잖아.
네가 야마구치의 고백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좋아해, 히토카."
전했다면, 전해졌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너에게 전해졌다면. 나는 그걸로 됐어. 이제, 됐어──.
* * *
후반부에는 곡의 가사 중 일부가 살짝 각색 되어 쓰였습니다 ('ㅂ' ..
밝은 분위기의 뭔가 두근 거리는 그런 걸 원했는데
청춘 순정물은 힘든거에여.,... 내가 청춘이 아니라 못 쓰겠어요....
야치가 야마구치를 선택하게 되는 건 양호실에서 츳키가 눈을 떴을 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게 야마구치인 것이 나름의 복선...이라면 복선<<<
썼다 지웠다 했지만 결국 이런 결말이 되었네요 그래도 츳키가 만족하는??? 결말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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