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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야치] 비가 그치면야치른(谷地受け)/쿠로야치 2015. 12. 15. 02:28
간단히 샤워를 끝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대며 다시 방으로 돌아와 옷장 문을 열어재꼈다. 매캐한 냄새가 훅 풍겨와 코를 찔렀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담배 끊는게 좋을까. 야치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머릿 속에 자동 재생 된다.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꺼내 머리를 밀어 넣으며 중얼 거린다. ─그래, 이번엔 꼭 끊자.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습관적으로 탁상 위에 놓인 담배를 챙긴다.
구제불능. 나를 표현하기에 이 정도로 딱 알맞는 말이 또 있을까.
집 안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딱히 갈 곳이 있는 것도, 할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지만, 일단 집에서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 더 일찍 너를 보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그래,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꽃다발을 사서 조금 빨리 나가 너를 기다리자.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왁스를 풀었다.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와 집 앞 정류장에 섰다. 몇년 전의 겨울에 너와 함께 고른 감색 패딩은 별로 꺼내 입지 않아 여즉 새 것과도 같은 모양새였다. 겨울이 돌아올 적 마다 너는 늘 이 패딩을 입지 않는 것에 볼멘 소리를 냈다.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니란 말야.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댔던 것을 기억해낸다. 너는 그 때 조금,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의 그 표정을 읽지 못한 채, 너를 외면했다.
"……킁."
차가운 바깥 공기에 코 끝이 빨개진다. 숨을 쉴 적 마다 알싸한 느낌이 코를 타고 넘어온다. ─버스 안오나. 얼른 버스에 몸을 싣고, 따뜻한 공기에 안기고 싶었다. 아니, 아니. 기왕이면 네 품에 안기고 싶었다. 너와 사귄 이 몇 년간, 오늘만큼 네가 그리운 날이 있었던 가. 순간 주머니에 챙긴 담배각이 손에 잡혔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물고는 딸깍, 불을 피웠다.
"부릉─."
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직 한 모금도 하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떨궈 발로 짓이긴 채, 나를 향해 열린 버스에 몸을 실었다.
네가 정한 약속 장소는 역 근처 번화가를 지나서 조금 더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작은 카페였다. 아마도, 나는 너와 여기서 처음으로 연인으로서 데이트를 했다. 모든 것이 서툴러서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럼에도 너는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지?
순간 오한이 들어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춥다. 거 더럽게 춥네. 무심코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니 약속까지는 아직 2시간여 정도 남아 있었다. 이 넘쳐 흐르는 시간을 대체 어디에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 일단 우선은. 우선 네가 좋아하는 꽃다발을 사기로 했다. 천천히 발길을 돌려, 역 앞의 꽃 집으로 향한다.
너는 예전부터 꽃을 좋아했다. 이름에 꽃 화花 자가 들어가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런 너에게 꽃을 선물한 적은 손에 꼽았다.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너는 추위에 빨개진 코와 상기된 볼을 더욱 빨갛게 물들이며 울며 웃었다. ─고마워요, 너무 좋아! 그 모습에 나는 한 번 더 너에게 반했던 것 같다.
꽃 집에 다다르자, 평범하게 생긴 여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색한 목례로 그에 답한 채, 나와는 그다지 연이 없는 장소에 몸을 구겨 넣는다. 생화의 향기와 풀내음이 한데 섞여 코를 찔렀다. 천천히 발을 끌며 DP 되어있는 꽃들을 하나, 하나 눈에 담는다.
─네가 좋아했던 꽃이 뭐였더라? 너는 몇 번이나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넌지시 던져왔지만, 나는 그것을 주워 담으려 하지 않았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너는 서서히 너에 대한 것들을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굳이 그것을 캐내려하지도 않았다.
"…저기, 이거."
꽃가지를 포장하던 점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꽤나 작은 소리로 불렀지만, 가게 안은 BGM도 틀어놓지 않은 상태로 무척이나 고요해서 점원은 나의 목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었다. 묶다 만 리본을 내려 놓은 점원은 카운터에서 나와 나에게로 다가왔다.
"금잔화 말씀이시죠."
"아, 네."
이름 같은 건 알 턱이 없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송이면 되시나요?"
"아, 아뇨. 저기 다발로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점원은 조금 의아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다발, 이면 혹시 선물 하시려는 건가요?"
"예? 아, 예. 그렇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내 대답이 영 석연찮았는 듯 점원은 조금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꽃을 들어 카운터로 돌아가서는 능숙한 솜씨로 꽃을 손질하고, 꽃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멋들어진 꽃다발이 완성 되었다. 꽃다발의 값을 말한 점원은 여전히 석연찮은 얼굴로 내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지만, 끝끝내 점원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나 역시 찜찜한 기분이 들어 내 쪽에서 직접 점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물어 보려했지만, 곧 다른 손님이 들어와 점원을 찾았기 때문에 나는 열린 입을 다물고 꽃다발을 든 채 꽃 집을 나와야만 했다.
밖으로 나와 올려다 본 하늘은 여전히 찌푸린 날씨로, 빗줄기는 조금 약해져 있었다. 우산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했지만 오랜 만에 깔끔하게 올려진 머리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우산을 쓰기로 했다.
꽃 집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약속 시간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었다. ─상점가나 구경하다 30분쯤 전에 카페로 향하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상점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상점가에는 의외로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편이었다. 날씨가 날씨다 보니 그런 것이겠지. 얼마 없는 사람 구경을 하며 터덜터덜 상점가를 거닐다가, 문득 눈길을 끄는 무언가에 발걸음을 멈췄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작은 액세서리 샵의 가판대 위에 놓인 헤어핀이었다.
나의 엄지 손가락 정도 크기의, 별 모양으로 깎인 보석이 달린 헤어핀은 본능적으로 야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늘 별 모양의 액세서리나 문구 용품을 모으곤 했던 모습이 생각 났다. ─요새는 한 번도 이런 거 쓰는 걸 본 적이 없지만.
아마 그 이유는 나 때문이리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어린애처럼 별 모양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해 몇 번 타박을 주었던 적이 있었다. 조금 더 어른스럽게 굴라는 나의 말에 야치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야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별 모양의 액세서리를 버렸다. 단지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뒤늦은 후회. 이제 와 후회를 한다손 쳐도 네가 그 때 입은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 오래 된 상처는 아물었지만, 보기 싫게 흉이 져 버렸다. 나는 그것을 지워낼 수 없다. 아니, 아마 야치 자신도 그 흉터를 지워내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참, 다 늦어 자아성찰을 하면 어쩌잔건지."
─담배 말린다. 이 놈의 망할 비는 언제쯤 그치는 거야. 빗줄기가 약해졌을 뿐이지, 비는 여즉까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마치 그 날의 네 눈물샘과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크게 싸워서, 이대로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날, 너는 정말 평생을 울 만큼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렇게 날이 선 상황 속에서도 네가 탈수 증세가 와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기가 찬 생각이 들 정도로 너는 울었다. ─친족이 죽는다 해도 그만큼 울지는 않을 거야. 그 당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질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울고도 아직도 흘린 눈물이 남아서 훌쩍이는 거야. 맨날 나만 나쁜 새끼로 만들면 다야? 나로 인해 울고 있는 여자친구를 앞에 두고서 하는 생각이란 게 그런 생각이었다. 참, 구제불능에 못난 새끼였구나. 새삼스럽다.
상점가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시계탑을 올려다보니 약속 시간이 어느 새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30분 전에 카페에 도착 해 너를 기다리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한심하기 짝이 없구만. 지금부터 카페로 향해도 적어도 5분은 지각을 면치 못한다. ─아, 정말, 담배 말리네. 카페 쪽으로 발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아아, 미쳤다고 새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와서! 엊그제 세탁한 스니커즈는 어느 새 흙탕물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아무리 데이트에 늦었다고 쳐도 신발을 더럽혀가면서까지 뛰지는 않았을 텐데…. 이게 다 비가 와서 그런 것이다. 이 한 겨울에 때 아닌 비가 내려서. 차라리 눈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이미 스니커즈의 상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 무렵,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약속 시간에서 2분 정도밖에 지나있지 않았다. ─세이프….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네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나를 반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으면 작은 소리로 나를 타박하겠지. 그럼 나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건내는 것이다. 너는 반쯤 풀어진 얼굴로, 이런 걸로 풀릴 것 같냐며 볼멘 소리를 내겠지.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너의 새하얀 볼을 꼬집는 거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마주치고, 너는 차가운 내 손을 따뜻한 두 손으로 잡아 녹여줄 것이다.
여즉껏 그래왔듯이, 너는 오늘도 그럴 것이다. 결국 자신을 허물어뜨리며 나를 받아줄 것이고, 그 따뜻한 품을 다시 열어주겠지.
대화를 하는 내내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너는 지금. 저도 모르게 달달 떨리는 발을 지긋이 눌렀다. 너는 울지도, 웃지도 않은 채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눈 앞에 놓인 커피는 여즉 따뜻한 김을 피워내고 있었고, 카페는 창에 김이 서려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히터를 틀어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와 나를 둘러싼 공기는 오한이 들 정도였다.
"미안해요."
─네가 미안할게 뭐가 있어? 목구멍을 무언가가 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무언가 말을 해야하는데, 말라 붙은 입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제발, 히토카. 제발. 카페에 들어와 네 앞에 앉는 순간부터, 네가 입을 연 순간부터 몇 번이고 속으로 너를 불러댔는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속으로 부르는 말이 너에게 전해질 리 만무했다.
"미안해요, 나는 더 이상 못하겠어. 이제 우리 그만해요. 많이 힘들었잖아. 많이…."
대체 뭐가 그렇게 너를 힘들어 했단 거야. 아니, 아니다. 알고 있어. 내가 너를 그렇게까지 힘들게 했어. 하지만, 하지만. 내가 그래도 너는 다시 날 봐 줄 거잖아. 다시, 다시, 다시.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쿠로오 씨는."
그럴 리가 없잖아. 너보다 좋은 사람이─.
"나는 생겼어요. 쿠로오 씨보다 좋은 사람."
────.
──.
"……뭐?"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게 된 선배라고 했다.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주고, 사랑해준다고 했다. 나보다 더. 모든 것이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몇 년 간의 시간이 없었던 것 처럼,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와 나 사이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너지고…….
흩어져간다.
마치 형체를 알 수 없이 흐트러진 꽃다발 처럼.
예쁘게 포장 된 꽃다발 처럼 아름다웠던 우리의 시간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좀 먹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외면하고, 방치했다. 가끔은 그 위태로운 꽃다발을 바닥에 내던지기도 했다. 이미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꽃다발의 상태는 무시한 채로 전력질주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 끝은 이렇다. 아름다웠던 꽃다발은, 형체를 알 수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바닥에 나뒹굴며 차가운 겨울 비를 맞아대고 있었다.
예뻤던 노란 꽃은, 차가운 겨울 비에 견디지 못하고 벌써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아,
이건, 나구나.
바닥에 나뒹굴던 꽃다발은 어느 새 초라한 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질린다 진짜…."
겨울의 차가운 비는 따갑게 피부를 때려댔다. 질린다. 그렇게 울어놓고, 아직도 나는 쏟아낼 눈물이 남아 있었다. 질린다. 정말. 아, 아니야. 이건 내가 우는 게 아니라, 비가 내려서, 비가 내려서 그러는 거다. 내 눈물이 아니다. 계속 볼을 타고 흐르는 건, 차가운 겨울비. 내 눈물이 아닌─.
"비가 와서 그래…."
너와의 추억들을 되새긴 것도, 때 늦은 자아성찰을 한 것도, 답잖은 행동들을 한 것도, 네가 나에게 이별을 고한 것도, 너를 붙잡지 못한 것도 모두─
비가 와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이 비가 그치면,
"……."
비가 그치면──.
이, 비가.
그치면──.쿠로야치 / 『비가 그치면』
written by WOOUL
와 스레기 같은 남자친구...ㅠㅠㅠ
안대 내 안의 쿠로오는 이렇지 않ㅎ은ㄴ데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찌통 성애자라서 그런가 안된닥ㄱ오 이거 쿠로야치가 아니잖아 근데
깨졌잖아(다 쓰고 깨달음
아니야 비 그치면 다시 만나게쬬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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