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을 혼자 울고 있었던 걸까, 이제 더 이상 울 힘도 남아있지 않은 듯 어깨만을 움찔거리며 ‘히끅, 히끅’ 소리를 낸다. 눈두덩은 이미 붉게 부어 안쓰러울 정도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세면대에서
손에 뭍은 붉은 액체를 덤덤히 씻어 내다, 문득 거울을 본 ‘나’는 볼멘 소리를 냈다.
“……아-, 얼굴에도 튀겼어, 이 자식.”
아직
붉은 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손으로 벅벅 얼굴에 뭍은 얼룩을 지워낸다. 비릿한 철의 냄새는 언제 맡아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수도꼭지를 잠근다.
“후.”
“……히끅.”
바람이
빠진 풍선 마냥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를 ‘나’는 무덤덤하게
내려다본다. ‘내’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녀에게 가까워질 때 마다 움찔거리는 어깨가 그녀가 아직 ‘제
정신’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몇
발자국 만에 그녀의 앞에 선 ‘나’는 다리를 굽혀 그녀의
눈과 마주한다. 마주치려 하지 않는 눈을, 억지로 얼굴을
잡아 끌어 맞추고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미안, 늦었습니다.”
“……흐윽, 윽…….”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은 걸까. 다시 젖어 들기 시작한 눈가에서 흐른 물은 그녀의 뺨을 움켜쥔 ‘나’의 손등을 타고 흐른다.
정갈하고
정적으로 차려진 그 모습보다 이렇게 ‘나’로 인해 엉망이
된 얼굴이, ‘나’는 오히려 흥분된다.
억지로
청 테이프가 발라진 그녀의 입에 ‘나’의 입을 맞추고, 핥으며, 탐한다.
“……하아, 너무 혼자 두고 말았네요. 무서웠습니까?”
“……흐……윽…….”
“웬만하면 보여주기 싫었는데. 그러게 왜 말을 안 듣는 겁니까? 내가 거기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지 않았나요?”
“……으으…….”
“그렇게 저 녀석이 보고 싶었던 겁니까?”
“…히끅….”
움찔. 가련하게 떠는 어깻죽지를 벗겨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그 녀석’을 입에 올리자 반응하는 그녀를 벌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다.
“좀 더 깔끔하게 하고 싶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잘 안 됐습니다. ……역시 글로 읽는 거랑 실제로
해 보는 거랑 너무 차이가 심하네요. 다음 번에는 써는 거 보다, 역시
녹이는 쪽으로 할까.”
“……흡…….”
“물론, 야치 상이 얌전히 내 옆에만 있어준다면, 더는 그럴 필요가 없겠죠?”
‘나’의
말에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위, 아래로 까딱인다.
“역시, 이렇게 보여줘야, 말을 듣네요. 야치
상. 어렸을 때부터 그랬죠?”
덜덜. 덜덜. 덜덜. ‘내’ 손에 억지로 반쯤 일으켜 세워진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 ‘나’로 인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모습이 즐거워서, 즐거워서 참을
수가 없다.
“어렸을 때, 야치 상이 좋아하던 남자아이, 있었죠. 바보 같은 얼굴로 야치 상과 결혼할거라던가 그런 소리 내뱉고 다니던 녀석. ……그
녀석, 실종 됐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우, 으…….”
“야치 상이 내 말을, 안.들.었.으.니.까.”
“…우우….”
청
테이프 너머로 그녀의 울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내가, 내가, 너는, 나만, 봐야 한다고, 그렇게, 말, 했는데.”
“아,
읍!”
그녀의
어깻죽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그녀가 아픔에 신음한다.
“야치 상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건 나뿐, 야치
상의 눈길을 받아도 되는 건 나뿐, 야치 상을 바라봐도 되는 건 나뿐……. 그런데 그 녀석, 야치 상의 눈에 들었다고 우쭐해져서는……. 나도 부르지 못하는 야치 상의 밑
이름을 불렀지요? 그래서 벌을 받은 겁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무서워. 아파. 그녀의 온 몸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움찔 거리는 그녀에게 반응해 더욱 세게 그 어깨를 쥘 뿐.
“……으브으브읍…….”
“이런, 입에 붙인 것 떼 내 줄까요?”
“……으…….”
사정하듯
‘나’를 올려다 보는 모습이 퍽, 마음에 든다.
“대신, 내 이름만을 입에 올려 주세요. 그 외에는 필요 없습니다. 네 입술에 올라도 되는 건, 내 이름뿐이니까.”
그녀의
고개가 위, 아래로 천천히 끄덕이자 ‘나’는 그녀의 입에 칠해져 있던 테이프를 천천히 뜯어 낸다. 테이프를
뜯어 낸 입 주위가 자극으로 인해 벌겋게 올라와 있다.
“……아픈가요?”
“…….”
끄덕. 그녀가 아까보다는 빠르게 위 아래로 고개를 끄덕인다.
“핥아 줄까요?”
“…….”
그녀에게
망설임의 눈빛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
그녀는
체념한 듯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고개를 떨군다.
“많이 아팠겠다. 미안해요. ……하지만 소리를 지른 당신이 나쁜 거 알고 있죠?”
“…….”
끄덕.
“……이름, 불러 주시겠습니까?”
“……으……케, 이……윽……흐윽…….”
다시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이름을 부르다 말고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흐……윽……. 우윽…….”
“……야치 상. 아아, 야치 상.”
“……힉, 흑, 힉…….”
가녀린
여자. ‘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여자. ‘내’가 옆에서 지켜주지 않으면,
부서져 버리고 말아. ‘나’는 작아질 대로 작아진
그녀를 품에 안는다.
“계속, 계속, 불러 주세요. 다른
사람의 이름을 수 없이 입에 올려서 더러워진 그 입을, 제 이름으로 씻어 내주세요.”
“……아, 흑……케……이……지……. 케……이……지…….”
오늘
밤, 너를 밝히던 달은 뜨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지. 올빼미는 밤 눈이 밝으니까. 네가 어느 어둠에 숨던, 나는 너를 찾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