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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나야치] 친구
    야치른(谷地受け)/히나야치 2016. 2. 13. 23:29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기대하던 고등학교 입학. 하지만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친구는 한 명도 없이,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떠드는 걸 멀리서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을 때 쯔음. 우연히 네 뒷자리에 앉은 나에게,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내 이름을 물어왔다.


     "아, 야, 야치… 야치 히토카…."


    우물우물, 시선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을 터인데도 그는 타박 한 번 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음, 음! 야치 상이구나!'하고는 내 이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내이는 것이었다. 마치 머리 속에 내 이름을 저장해 놓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며 왠지 조금 볼이 달아올랐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저렇게나 되내이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운 일인 줄은 몰랐었다.


     "아! 맞다. 내 소개를 안했네! 미안, 미안! 난 유키가오카 중 출신, 히나타 쇼요! 잘 부탁해!"

     "아, 아, 응! 자, 잘 부탁, 해…."

     "나 말이지, 중학교 때 부터 배구 시작했거든! 예전에 TV에서 우연히 배구 경기를 중계해 주는 걸 본 적 있는데 말이야! 그 때 너무 너무 멋있는 선수를 봐서, 동경하게 되버려서 말이지~. 그 때 부터 다짜고짜 배구 시작하고……. 제대로 된 경기는 딱 한 번 밖에 해 본 적 없지만! 아무튼 그 때 선수가 속해있던 학교가 바로 이 카라스노 고교여서 말이지, 아아, 정말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판정 X여서 정말 죽을 듯이 노력해서~!"

     "아아, 그, 그랬구나아…."


    딱히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봇물 터지듯이 쏟아내는 네 모습에, 나는 조금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하며 시선을 내리 깔았다. …소심한 나에게 가장 안 맞는, 거북한 타입. 처음 그의 인상을 말하라면 딱 그 정도였다. 그 정도였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그를 마음에 담아두게 되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정신차리고보니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따갑다고 생각했던 그 햇살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눈부셔서, 늘 곁에 있고 싶어져 있었다.


     "저, 저기, 히토카!"


    그렇게 우연히 앞 자리, 뒷 자리에 배정되어 알게 된 우리 둘은 꽤 가까운 시간 안에 친해져버려서, 금새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즈음이었을까, 시시콜콜한 얘기도 전부 털어놓고, 서로가 서로의 가족들에게 눈도장도 찍게 되고, 등하교를 함께 하고, 집에 도착하면 서로 잠들 때 까지 메일을 주고 받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을 즈음. 네가 갑자기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 나를 불러 세웠다.


     "저, 시간 있으면 잠깐, 얘기, 좀 해도 될까?"

     "아? 어? 으, 으응…."


    새빨개지는 얼굴을 막을 도리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인채. 너의 얼굴도 보지 않고. 꿍얼, 꿍얼, 겨우 대답을 하자 너는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내 손을 붙잡고 척척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엄격한 엄마에게 제대로 나의 감정을 부딪히지 못할 때, 나를 끌어줬을 때 처럼. 너는 척. 척. 내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분명히 체격은 나와 그닥 차이가 없을 터인데도, 어째서 네가 나를 끌어줄 때 네 뒷 모습은 이렇게도 믿음직스러울까.


    다시금 얼굴에 열이 올라서, 눈을 질끈 감았다.


     "─다왔ㄷ…. 어라, 히토카? 왜 그래? 어디 아파?"

     "앗, 아, 으, 응?! 아, 아닛! 괘, 괜찮앗!"

     "엑, 하지만 얼굴이 새빨간걸? 잠깐, 잠깐, 있어봐. 열도 있는 거 같은데─."


    잠깐, 하느님! 아직 전 마음의 준비가, 준비가 안 됐어요!


     "─톡."

     "…으아…."

     "엇, 이것 봐라. 열 엄청 나잖아. 히토카, 보건실 갈까?"

     "윽, 으…."


    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이마에 대여진 너의 이마가, 너무나 차가웠기 때문에 그 자극에 나도 모르게 움찔 거려버렸다. 두근. 두근. 질끈 감았던 눈을 살짝 떠 본다. 한 눈에 가득 차 있는 너의 눈동자가, 너무, 너무, 가까워서, 심장을 부여 잡았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터지는 거 아닐까? 터질 거 같아. 아아, 어쩌면 이미 터져 버린 걸수도 있어.


     "괘, 괜… 찮아…."


    꾸깃. 꾸깃.

    애꿎은 와이셔츠를 구겨대며 목소리를 쥐어 짜낸다. 시원찮은 대답에 너의 얼굴에 불신이 한가득 떠오른다. 단호한 표정이 '떽!'하고 나를 혼내는 듯 하다. 마치 나츠에게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다. 나는 다시 한 번, 최대한 괜찮은 목소리를 냈다.


     "괜- 찮아!"

     "…정말이야?"

     "으, 응!"

     "히토카는 남의 눈치를 너무 본다니까. 아프면 아프다고,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제대로 말할 것! 나중에 가서 터져봤자,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 뿐이니까. 알았지?"

     "ㄴ, 네에…."


    제 여동생을 대하듯이 나에게 설교를 하고는, 무심코 '앗차'하는 표정을 하고서는 '미, 미안. 나도 모르게. 나츠한테 하는 것처럼….'하며 머쓱하게 제 머리를 긁으며 사과한다. 그 모습이 내 딴에는 또 무척 사랑스러워서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아니야!'라고 부정한다. 너에게 여동생 취급 당하는 것도, 딱히 나쁜 경험은 아닌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설교 후 나츠에게 하는 것 마냥 상냥하게 내 머리를 휘저어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려나.


     "그, 그래서 히나타! 무,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앗! 맞다. 참! 시, 실은 나… 히토카한테, 사, 상담할 게 있어서…."

     "응? 상담?"


    의외의 단어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 하게 된다. 내가 그에게 상담을 한 적은 있어도, 상담을 받은 적은 없다. 애시당초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그에게는 고민이라 부를 만한 게 없어 보였고. 설사 있다 해도 올곧은 성격 덕택에 큰 문제 없이 늘 고민을 뛰어넘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그의 상담을 받을 일은 없을 수 밖에. 그러데 그런 그가 나에게 '상담'이라니?


     "저, 그, 사실은, 히토카, 나, 그, 아, 진짜! 이렇게 각 잡고 말하려니까 좀 쑥스러운데… 그, 저기…."


    좀처럼 볼 수 없는 그의 뜸들임에 입이 바싹바싹, 말라 가는 것을 느꼈다. 왠지 모를 불안감, 그 속의 긴장감, 그 속의 아주 작은 기대가 얼기설기 엮여서 복잡한 감정에 사로 잡힌다. 손가락 장난을 하며, 애써 자신을 진정시켜 보려고 하지만. 그가 뜸을 들이면 들일 수록, 그 속의 아주 작은 기대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혹시 몰라, 고백일지도!' 뿌득. 손에서 비식비식 식은 땀이 배어 나온다.


     "그, 있잖아, 실은 내가, 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 그, 같은 배구부 선배인데, 시, 시미즈 선배라고! 처, 첫눈에 반해 버려서… 나 여자는 잘 모르고, 친한 여자라고 해봤자 히토카 뿐이고, 그래서 이런 말 할 수 있는 거 히토카 밖에 없으니까! 조, 조언이라고 해야할까, 여러가지, 알려주었으면 해서 말이야!"


    퍽.

    누군가가 내 뒷통수를 세게 후려 친 느낌이 들었다. '아, 아아. 뭐라고? 아, 아아. 그렇구나. 으응. 어어, 글쎄,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으려나아.' 말을 흐리며 괜히 고개를 이리, 저리, 흔든다. 시선을 한 곳에 둘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상실감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고개를 숙일 수가 없었다. 한껏 고개를 치켜 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이마에 손을 짚고 힘겹게 말한다.


     "아, 역시, 조금 아플지도……."


    아아, 안 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려서 두 손에 눈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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