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카게야치] Just Be friends 上
    야치른(谷地受け)/카게야치 2015. 12. 19. 05:39
    나는 네가 보고있는 그 끝에 서 있는게 설령 내가 아니라 해도, 너를 계속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다. 사람이라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어서, 이 좋은 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 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여러 매체에서, 주변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이별들을 목격해도 그것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나도 그리고 너도, 너무 어렸던 것이다. '사랑'을 논하기엔 우리는 아직 너무 어렸고, 미숙했다. 자신에 대해서도, 서로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렇게 너무나도 미숙한 만남 끝에, 이별을 고한다.






    "야치 상, 이거!"


    "아, 고마워. 히나타 군."


    너는 언제나 조금 멀찍이서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도도 눈치 못 챌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그게 과연 어떠한 의미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네 눈빛은 딱히 배구 공을 만지고 있지 않을 때에도 살벌한 편이었고, 무뚝뚝한 태도와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도통 관심이 없는 태도 등에 나는 너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 반해 너의 파트너인 히나타는 너무나도 너와 대비되는 사람이었다. 친화력도 좋고,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할 줄 알았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태도. 나와도 무척이나 상반되는 타입인 그의 모습에 나는 히나타에게 '동경'이라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물론 그 감정을 제하고 봐도 그는 '친구'로써 아주 좋은 타입이었다. 어디에서나 분위기 메이커라고 불릴만한 그런 존재.


    배구부에서 동성인 시미즈 선배를 제하고, 이성들 중 가장 옆에 있어 편한 사람이라면 나는 주저 않고 히나타를 꼽을 정도로, 그는 나에게 있어 정말로 편한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근처에 있거나, 그와 말을 섞는 일이 아주 많았다. 그 모습은 우리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니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봐도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모습이었다고 이제와서는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배구부의 선배들 조차 의아해하며 우리에게 곧잘 말하곤 했으니까.


    "엑, 야치랑 히나타 사귀는 거 아니었어?"


    "나는 진작에 사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나는 멋쩍게 웃으며 '아니에요'라며 손사레를 치고는 했다.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남기기는 했지만, 결국 수긍했다. 끝까지 수긍을 못 하는 것은 타나카 선배 정도로, 마지막에는 늘 주장의 손에 들려 연습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사귀는 사이라…….'


    나랑 히나타가?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히나타에게 가지고 있는 건 고작해야 동경이나 좋은 친구라는 마음 뿐이고, 이성으로써 그를 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가끔 연습이나 시합 도중 무언가 알 수 없는 압박감이나 존재감을 풀풀 내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카게야마. 너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미안, 맡기는 꼴이 되어버려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미안. 내일은 내가 제대로 정리할테니까."


    "네, 그럼 내일 뵐게요!"


    원래는 시미즈 선배와 함께 뒷정리를 해야 했지만, 그 날 따라 급한 용무가 생긴 시미즈 선배 대신 모든 뒷정리를 도맡아 해야 했다. 딱히 방과 후 할 일도 없었고, 엄마도 집에 돌아오시는 게 늦는다고 했으니 상관은 없는 일이었지만. 미안해하는 시미즈 선배를 뒤로 하고, 연습으로 어지럽혀진 체육관을 바라보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꽤나 걸리겠는걸……. 뭐 그래도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나. 하고 중얼거리며 팔을 걷어 붙이고서 주변에 흩어진 공들을 집어 드는 순간 이었다.


    ─드르륵.


    "아, 야치 상?"


    "……카, 카게야마 군? 아직 하교 안 한 거야?"


    너는 나의 물음에 뺨을 긁적이며, '아, 자율 연습이나 좀 하다 갈까 하고…'라며 말을 흐렸다. 자율 연습은 미리 선생님이나 주장에게 말을 해둬야 하는 사항일텐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한테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라고 하자 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눈동자만 떼굴떼굴 굴렸다. 나는 아, 아. 그제서야 상황 파악을 하고선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부자연스러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선생님이 깜빡하시고 나한테 말을 안 해주셨나보다! 자율 연습할 거라고? 어, 그럼 내가 좀 도와줄까? 어떤 연습할건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마음이 앞서서, 평소보다도 주절주절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카게야마에게 다가갔다. 아마 네가 봤을 때 그 때의 내 얼굴은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서 웃길 정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의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너는 지독히 포커페이스였다. 그 때도, 지금도.


    그래서 그 날, 네가 이별을 고하며 흘린 눈물에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당황했다. 네 얼굴이 그렇게나 풍부한 표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너와 이어져 있던 그 시간 동안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찌되었든 나는 너의 연습에 어울리기로 했다. 너에게 공을 올려주면 될 뿐인, 아주 간단한 도움이었지만 나는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기뻤다. 그렇게 너에게 몇 번 째인가의 공을 올려줬을 때, 너는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너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저 몸을 움직여 얼굴에 범벅이 된 땀 만이 아까 전과의 다른 점이었다.


    "야치 상."


    "어, 응?"


    "야치 상은, 히나타랑 사귀는 거야?"


    ─툭.


    나는 너에게 올려주려던 배구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대한, 나의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히나타랑 사귀는 거야?'


    너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나는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왜 그 때 아무런 대답도 못한 거지? 선배들의 말에는 그렇게나 빠르고 간결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는데. 네 까맣고 곧은 눈이 내 눈과 마주치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멀뚱히 너만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으아, 바보, 바보, 바보!


    그렇게 멀뚱히 내가 너를 바라보는 동안, 너는 조금 깊은 한숨을 내쉬고, 가벼운 목례와 함께 말했다.


    '그만 정리하자. 집에 가야지.'


    그리고 천천히 주변에 흐트러져 있던 배구공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나 또한 아무런 말도 못하고 너를 따라 공을 줍기 시작했다. 체육관 정리는 빠르게 끝이 났다. 그 시간 동안 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너는 묵묵히 체육관에 자물쇠까지 마저 채워냈다.


    '…아, 저기.'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이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서, 이 어색함이 싫어서. 겨우 입술을 달싹여 말을 붙였다. 나의 개미만한 목소리에 너는 내 쪽을 흘끗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다시 돌리며 무미건조한 투로 말했다.


    '가자, 데려다 줄게.'


    대답. 이라기엔 무언가 부족한 것.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네가 커다란 보폭으로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나는 그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네 보폭은 조금 화가난 것도 같았지만, 화가 난 것이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왠지 그게 더 너의 화를 돋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네 커다란 보폭을 정신 없이 따라잡다 보니 어느 새 우리는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 데려다 줘서 고마…….'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너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방향을 틀어 역 쪽으로 향했다. 뭐지, 나 미움 받은 건가……. 원인이라면 짐작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연습 도중 그가 했던 물음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은 것. 하지만, 그게 대체 무슨 상관 인거지? 앞서 말했지만 나는 둔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치가 빠른 것도 아니었다. 특히 연애나 이성간의 문제에는, 둔하다면 둔한 편이었다.


    네가 화를 내는 이유까지는 짐작이 갔지만, 그게 대체 왜 너의 화를 돋구는 것 까지는 알 수 없었다.


    "히토카, 누가 너 부르는데?"


    "어?"


    책상 위에 펼쳐진 영어 노트에 고개를 쳐박고, 어제의 일을 회상하며 노트에 카게야마의 이름을 잔뜩 끄적이고 있을 때 였다. 누군가가 나를 찾는 다는 클래스 메이트의 말에 쳐박았던 고개를 들어 교실 앞 문 부근을 확인하였다. 익숙한 뻗친 주황 머리.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키. 히나타였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어, 아니야. 괜찮아! 그, 근데 무슨 일이야?"


    "아아, 다름이 아니라, 혹시 카게야마 무슨 일 있었어?"


    히나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흠칫, 놀란다. 하마터면 히나타가 뽑아 준 캔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어, 아니, 왜, 무슨 일인데?"


    조금 어색한 음정으로 대답했다. 물론 히나타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아니, 그 자식 뭔가 요새 상태 이상하긴 했거든? 내가 야치 상이랑 있으면 노려보고 장난 아니었다고.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눈빛 알지? 그 눈빛! 진짜 얼마나 무서운데! 내가 실수할 적 마다 그런 눈… 아니, 요점은 이게 아니라! 아무튼 어제도 부활 끝나고 다 같이 부실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먼저 가라고 소리치면서 체육관으로 달려가는 거야! 뭔가 싶어서 다나카 선배들이랑 따라가려고 하다가, 주장이 막아서서 결국 먼저 하교하기는 했는데……. 그런데 그러고 나서 오늘 갑자기, 내 말에 일절 대답도 안하는 거 있지! 아예 나를 없는 놈 처럼 무시한다니까? 이거 분명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 혹시 야치 상 아는 거 없어?"


    히나타는 속사포처럼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서는, 뾰루퉁한 표정을 한 채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음. 설마, 혹시. 하는 마음이 고개를 치켜들 것만 같다. 그런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모른 채 했다. 어제의 일을 말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대로 두면, 분명 히나타 오해 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입을 열어, 어제의 일을 늘어 놓았다.






    "카게야마 자식, 야치 상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화장실 거울로 확인한 내 얼굴은 아직도 벌겋다. 꼭 낮주라도 한 사람 처럼……. 아아, 이런 꼴로 어떻게 교실에 돌아가. 아, 아니, 교실로 돌아가는 중간에 너라도 마주치게 될까 그것이 겁났다. 여자 화장실에서 우리 반으로 돌아가려면, 너의 반을 지나야 했으니까. 돌아가는 도중에 너와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얼굴 보여주고 싶지 않아. 나는 수도꼭지를 비틀었다. ─아아, 제발. 그만 가라 앉아줘. 하지만 심장에라도 찬 물을 뿌리지 않는 이상,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을 듯 했다.


    어제의 일들을 털어놓자, 히나타는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만들며 아무렇지도 않게 네가 나를 좋아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히나타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일까, 그것이 너무도 단순한 문제로 느껴졌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단순한 일이었다. 그것이 나를 포함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생각의 방 저 끝 구석에 밀어 두고 있던 결론이었다.


    "으……."


    찬 물을 계속 뒤집어써 엉망이 된 앞머리가 보기 싫었다. 아, 오늘 부활은 어떡하지. 이대로 꾀병을 부려 조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과도 같았다. 너를 어떤 얼굴로 마주보아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설마, 정말로,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지?






    정말로 꾀병이라도 부려서 조퇴라도 해야될까… 부활 가기 싫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던 차에 어느 덧 방과 후 시간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설사 오늘 이를 피한다 해도, 부활동을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문제니까. 몸을 일으켜 책상 위에 널부러진 교과서와 노트를 느릿느릿 정리하고 가방을 챙겼다.


    "후…."


    짧은 한숨을 내쉬며 가방의 한 쪽 어깨끈을 걸친 순간,


    "히토카, 누가 또 너 찾는다."


    클래스 메이트의 손 끝을 따라 뒷 문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하마터면 어깨에 반쯤 걸친 책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눈에 익은 흑발. 한 눈에 담기 힘든 큰 키.


    "카, 게야마 군……."







    너는 나를 체육관 뒤 쪽에 자리잡은 벤치로 데려갔다. 아직은 조금 변덕스럽게 구는 날씨 탓에 어제보다 기온이 조금 내려가 있었기에, 너는 자판기에서 따뜻한 음료를 사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따뜻한 음료가 내 차가운 손에서 미적지근해질 때 까지 캔을 딸 생각조차 못한 채, 멀뚱히 앉아있기만 했다. 너 또한 그 시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캔의 내용물을 비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음료를 다 마셨을 때 쯤, 너는 입을 열었다.


    "야치 상."


    나는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았다.


    "나는─."



    네가 나에 대한 마음을 깨달은 건, 내가 입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라고 했다.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는 못해도 가까워 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현저히 낮은 너였기에 쉽사리 말을 건내는 것 조차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와 히나타의 관계가 좁혀졌다. 물론 나와 히나타는 서로가 친한 부활동 친구인 정도였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아가 연인 관계로도 보일 수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너의 눈에는 우리 사이가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너는 히나타에게 묘한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그것의 진위를 확인하려 했다. 그것이 자신의 비약인지, 아니면….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눈치만 보고 있을 무렵, 시미즈 선배가 용무로 일찍 하교를 해 내가 체육관 정리를 위해 혼자 남게 된 날. 그 나름의 용기를 가지고 너는 나에게 물었고, 내 대답은 애매했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너의 이름을 부르며, 반론을 하려 했다. 아니야, 나는 히나타 군과─


    "아니, 아무 관계도 아닌 것 알고 있어. 미안. 히나타에게 전부 듣고 오는 길이야. 내가…. 내 멋대로 착각해서, 아아!"


    너는 자신의 커다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안'하고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볼이 상기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는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그 때의 네가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너는 계속 이 상황이 부끄러운 지 끙끙 앓는 소리를 냈으니까.


    어찌되었든 오해는 풀렸다. 너는 내가 히나타와 친구 이상의 관계가 아니란 것에 안도했다. 왜냐면, 너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장애물이 없다는 걸 확인한 지금,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지금, 너는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러 왔다.


    계속 앓는 소리를 내던 너는 문득, 제 손바닥에 파묻은 얼굴을 불쑥 치켜들고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너는 나를 불러내어 이 곳에 앉혀놓은 이유를 지금, 꺼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니까 야치 상, 나와 사귀어주세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눈.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 그리고 평소와 다름 없는 무뚝뚝한 표정. 아니, 두 볼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순간에도, 지금도.


    나는 너의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운 고백이 무척이나 서툴어서, 그럼에도 그게 퍽 너와 같아서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났다.


    "─응, 좋아요."


    내가 나에게 한 고백을 받아들인 그 날은, 우리가 연인 사이가 된 그 날은, 뒷 교사의 벚나무가 꽃봉오리를 맺은 날이었다.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늘 그렇듯, 떨림이 있다. 신선하기도 하고, 자극적이기도 하다. 첫 등교, 첫 만남, 첫 연애.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첫 연인이었다. 너의 모든 것이 나를 떨리게 했고, 나의 모든 것이 너를 자극했다.


    주변 사람들 모르게 주고 받는 작은 스킨쉽이나 눈짓.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하교길을 다시 돌아서, 둘이 함께 돌아가는 하교길. 휴일에 아무도 모르게 잡고 만나는 약속. 학생들이 잘 오지 않는 도서실의 구석에서 나누는 서로의 온기. 옥상에서 함께하는 둘만의 점심 시간.


    모든 것이 처음 해보는 것들 투성이었기 때문에, 너와 나는 그저 그 떨림과 신선한 자극을 쫓으며 맛보기 바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극들에 익숙해진 후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카게야마, 요즘 상태가 좋지 않은 거 같은데."


    나와의 연애에 빠져 너의 연습량이 다른 부원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게 되자, 곧 그것이 너와 팀원들 간의 실력차로써 나타나기 시작했다. 너의 미스가 많아졌고, 코치나 주장에게 주의를 듣는 일이 많아졌다. 주전 세터가 삐걱이자, 곧 팀 전체가 삐걱였다.


    대체할 인재가 있다면 실력이 좋은 자는 살아남고, 실력이 없는 자는 도태된다. 그것은 무척이나 당연하고도 단순한 것이었다. 여즉까지 1학년인 네가 주전 세터로써 그 자리에 섰던 것은 단순히 네가 실력이 월등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네가 삐걱인다면. 그런 너의 실력이 떨어진다면──.


    "젠장!"


    신경질적으로 내던져진 공이 체육관 벽에 맞고 되돌아와 바닥을 굴렀다. 나는 내 발 끝까지 굴러 온 공을 줍지도 못한 채, 자신의 화를 억누르지 못한 채로 위태로이 서 있는 너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네 이름을 부를수도, 너를 안을수도, 너를 위로할 수도 없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나라는 존재였다. 내가 백 번 네 이름을 부르고, 너를 안고, 너를 위로한다손 쳐도 네가 채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히토카."


    "……."


    어느 새 너와 나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만큼, 가까워졌는데.


    "히토카, 나는, 나는……."


    어째서 우리의 거리는 이렇게나 멀게만 보이는 거지?


    "나는, 배구를 버릴 수가 없어……. 히토카, 그러니까."


    뒤 돌아 나를 바라보는 너의 얼굴은, 땀이 아니라, 눈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그 날카롭게 곧은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너는, 울고 있었다. 여즉껏 나에게 보여준 그 어떤 표정보다도 풍부한 감정이 녹아있는 얼굴.


    네가 처음으로 나에게 내보인 너의 격한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미안, 히토카, 미안……."


    나의 어깨를 붙잡은 너의 손이, 부르르 떨려온다.


    "나는, 나는……. 안 되겠어. 이제 더 이상."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열어 너를 불러본다.


    "토, 비오 군… 아니야, 아니야.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보자…. 괜찮을거야, 내가, 내가 참을테니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테니까. 옆에만 있어주면 되니까.


    "미안, 미안, 미안……."


    ─미안하단 소리 하지마, 그러지마.


    "히토카, 미안…… 미, 안……."


    ─제발.


    ─그만.


    내 어깨를 아플 정도로 쥔 네 손에서 점점 힘이 풀려 간다. ─싫어, 놓지마. 목이 매여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내뱉을 수가 없다. 무슨 말이든지, 턱 턱 막혀온다. 시야가 뿌얘지고, 온 몸이 떨려온다. ─토비오 군, 토비오 군. 네가 나의 가슴에 품었던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히토카. 내 이름을 부른다. ─우리, 이제…. 그의 목에서 쇠 긁는 소리가 난다. 듣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토비오 군. 나는. 나는.


    "그만하자……."


    왜, 왜, 왜, 왜.


    "토, 비오 군…. 왜? 왜, 우리 서로 좋아하는데, 그런데, 왜, 이런 건, 아니야 이런 건."


    이런 건 아니야.


    이런 건 아니야….


    "제발, 토비오 군…. 내가 잘 할게. 아무것도 안 바랄게. 그냥 옆에만 있어주면 되. 나 아무것도 안 바랄테니까, 네 옆에만 있게 해줘. 부탁이야. 부탁이야. 나는, 나는… 토비오 군이 없으면 안 돼… 제발…."


    그렇게 너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다리의 힘이 풀려서 주저 앉을 것만 같아. 너에게 매달린 나를, 너는 매몰차게 내려치지도, 그렇다고 따스히 안아주지도 못한 채로,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너의 망설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꿈과 나 사이에서 너는 아직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또아리를 틀었다.


    나를 안아줄 수 밖에 없게.


    너에게 매달렸다.


    새빨개진 얼굴로, 풀린 눈으로, 안달난 목소리로, 너를 올려다보며, 나는 너의 망설임에 들러 붙었다.






    너는 결국 나를 다시 받아들였다. 내가 그럴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올바른 연인의 관계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글쎄? 였다.


    너는 나보다도 자신의 꿈을 중요시하고, 나는 그런 너를 감당해낼 수 있을거라 믿었다. 네가 보고 있는 끝에 서 있는 게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나는 너를 계속 좋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자만하고 있었다.


    그가 싫어졌냐고? 그렇게 물으면 물론 아니다. 나는 아직도, 너를 좋아하고 있다. 너 또한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나를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야만 하는 관계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마음을 확인했다고 해도 그 관계에 끝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 때의 우리가 그걸 깨닫기에는, 나는 내 감정을 밀어붙이기 급급했고, 너는 네 꿈을 쫓기 급급했다.













    아 글 진짜 안 써진다ㅠㅠㅠㅠㅠ)

    힝 이런 찌통이 아니야 내가 원한ㄴ건....ㅠㅠㅠ

    음 좀 더 꽁냥거리는 걸 쓰고 싶어...ㅠㅠ 왜 난 꽁냥거리는 걸 못 쓰지;;;;

    미춰버리것네....

    쓰면서 야치한테 감정 이입 해서 썼ㅆ다...

    저런 타입과 연애하면 정말 넘 힘듬ㅇㅅㅠ)...흑

    게다가 어린 애들이니까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미숙하니까;;;...

    저 나잇적에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오래동안 지속되는 건 진짜 축복받은 거라 생각함...

    대부분은 서로를 배려해 주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중요히 여겨달라고 밀어붙이다가 상ㅇ처받으니깐..







    '야치른(谷地受け) > 카게야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게야치] Just Be friends 下  (0) 2015.12.2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