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좋아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봐 주지 않은 네가 나빠.”
그녀의 성난 눈이 나를 올려다 본다.
이렇게 너에게 미움 받고 있는데도, 나를 증오하는 게 느껴지는 데도 나는 네 눈이 오직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기뻐서 참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해서야 온전히 너는 나만을 바라봐주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내가 망가지고 나서야…….
“그런 눈으로 봐도, 나는 기뻐. 히토카.”
너의 향기로운 목에 코를 가져다 대고, 한 숨 들이 마신다. 너의 살결 내음은 마약과 같다. 내가 어디에 있건, 네가 어디에 있건, 생각이 나…… 맡고 싶어서, 들이 마시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너는 내 마음 따위는 알아주지도 않고,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더러운 냄새가 끼얹어져 돌아오고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보며 웃고, 웃고, 웃고, 웃고, 웃고, 웃고, 웃고.
……그러니까 네가 나빠. 네가 나빠. 네가 나빠.
“…미쳤어….”
음, 맞아. 네 말대로 일지도 몰라. 나는 확실히 미쳤던 거다.
“그래, 나는 너한테…….”
미쳐 있다.
* * *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이 난다.
‘으, 으아앙…….’
유치원 학예회에서 피아노 발표를 끝낸 너에게 건넨 검은 장미. 너는 그 장미 다발을 받고, 울음을 터트렸다. 흔하지 않은 검은 장미. 어린 마음에 꺼림칙한 꽃을 받아 들었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꽃다발에 담긴 나의 마음을, 본능적으로 눈치 챈 것일지도 몰랐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그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겼지만, 내가 너에게 주는 모든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의미가 없는 것이 없었다.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
“…….”
“오늘을 위해서, 오로지 널 위해서, 공수해 온 꽃들이야.”
방 안에는 온통 검은 장미들. 벽에도, 천장에도, 네 주위에도. 온통. 검은 장미.
바닥에 흩어진 장미들을 한껏 끌어 모아 네 위에 흩뿌려본다. 하얀 네 살색과 대비되는 검은 장미가, 아름답게 네 위에 흐트러진다.
코를 찌르는 장미향 때문인지 네가 인상을 찡그린다. 베란다 창을 통해 내려오는 월광이 너의 금발에 수를 놓는다. 새하얀 너의 살결에 푸른빛이 돌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아아, 너는 어째서 이렇게나 아름다울까.
“검은 장미는 정말 구하기 힘들어. 그래도 널 위해서 어렵게 구했어. 너를 생각하면서, 너만을 생각하면서. ……아, 어렸을 때 기억나? 네가 내가 준 꽃다발을 받아 들고 엉엉 울어버렸잖아.”
“…….”
“그 때,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팠어.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게 너무 기뻤어.”
“…….”
“오롯이 나로 인해 네 감정이 변화한다는 게, 너무 기쁜 거야.”
너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채 고개만을 떨군다. 아아, 너는 어째서 이다지도 사랑스러울까.
“앞으로는, 여기서 쭉, 쭉, 함께 있는 거야.”
“…….”
“그 교활한 녀석이 너를 탐하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 테니까.”
다시는 그 녀석의 썩은 과육 같은 목소리가, 네 귀를 핥지 않도록. 나는 너를 이 새장 안에 가둘 테니.
“이번에는, 도망가지 말아줘?”
너의 등이 휘어 네 몸이 나에게 감기는 것이 느껴진다.
“……아윽.”
“제발 히토카, 대답해줘.”
“……아, 윽. 아……파…….”
“히토카, 히토카, 히토카, 히토카.”
네 팔을 들어, 손가락부터, 손바닥, 손목, 팔뚝……. 코를 박고 네 살 내음을 맡는다. 목 부근을 지긋이 물어 뜯자, 교성이 들린다. 버릇이 될 거 같은 냄새, 목소리. 너는 나와 함께 몸을 섞을 때, 가장 단 내를 풍기고, 가장 간지러운 목소리를 낸다.
그 새끼는 너를 망칠 뿐이야. 네 가치를 제대로 아는 건 나 밖에 없어.
“……그만…….”
나를 쏘아보던 기세 등등한 눈빛이 어느 새 한풀 가셔 있는 것을 깨닫는다. 네 어깨가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네 사타구니를 타고 흐르는 피가 나의 허벅지를 적시는 것이 느껴진다.
“……히토카, 나밖에 없어. 네 가치를 진정으로 끌어낼 수 있는 건, 그 가치를 아는 건, 나 밖에 없어 히토카……. 너는 나와 함께 있어야 해. 알고 있잖아? 응?”
“……그만……그만, 그만, 그만, 그만…….”
네 눈이 물을 머금고, 투둑. 툭. 힘 없이 창백한 볼을 타고 흐르는 건, 눈물?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히토카, 왜 우는 거야……. 응? 응? 응? 응? 겨우 둘이서, 둘이서 하나가 됐는데……. 함께 있을 수 있게 됐는데? 응? 응? 응? 응?”
“……제발…….
……그만…그만…그만…….
……부……탁………이야…….”
망가진 테이프가 반복 재생을 하고 있는 거 같다. 듣기 싫어. 듣기 싫어. 듣기 싫어. 듣기 싫어. 잡음. 잡음. 잡음. 잡음. 잡음.
아아, 그렇구나. 너는 지금 망가져 있는 거야. 그래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아아, 그렇구나. 그 새끼가 너를 망가뜨린 거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히토카 미안해. 내가 조금 더 빨리 너를 그 새끼에게서 데려 왔어야 했어. 히토카, 히토카, 히토카, 히토카. 내가, 내가, 내가, 고쳐줄게. 지금, 지금, 지금, 지금.
“히-토-카─.”
“…!! 커억, 컥, 억…!!”
네 손이 나의 팔을 긁어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발작하듯 튀어오르는 네 몸의 반동으로 매트리스가 출렁인다. 내 몸 밑으로 깔린 네 다리가 침대 위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로 인해 마치 마지막을 축하하는 양, 검은 장미 꽃잎이 공중에 팔랑.
그리고 파랗게 질린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색 된 입술이, 힘 없이 떨어지는 네 두 팔이, 초점을 잃은 네 두 눈이, 흐르다 만 네 눈물이.
‘나만이 너를 살아가게 할 수 있어요.
당신의 날개를 찢어버리도록 하지요.
이제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도록.’
달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잠든 너와 나를 비출 뿐. 이제 겨우, 너는 조용히 나의 품에 안긴다.
“……히토카.”
그런데 왜, 너는…….
“……히토카?”
나를 봐 주지 않아?
“……히토카, 히토카, 히토카…….”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히토ㅋㅏ……?
[야치른] 愛しい子よ사랑스런 아이여
written by WO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