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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안즈] 사상누각砂上樓閣안즈른(あんず受付)/미카안즈 2017. 7. 15. 00:00
*Wait!
진짜 미카안즈가 맞는 것인가?
모두가 캐붕잔치...
그냥 이 사람의 뇌피셜에서는 애들이 이렇구나 라고 생각해주세요.
짝사랑(片思い)삼각관계 구도 있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부디▼
* * *
카게히라 미카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는 흐릿하게 낀 먹구름이 언뜻 언뜻 보였다. 추적, 추적, 내리는 비는 그의 머리 끝 부터 발 끝까지 적시고도 성이 차지 않아 보였고,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캄캄한 밤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앞에 그녀는 떨어진 우산을 주울 생각도 하지 않고서, 제 작은 양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카는 그 모습을 보고서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도, 떨어진 우산을 주워 그녀에게 씌워줄 수도, 당장에 달려나가서 그 작은 어깨를 제 품에 안을수도.
그녀와 함께 울어주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내는, 악역이니께.
*
카게히라 미카가 그녀와 만난 것은 꽤 오랜 시간 전이었다.
가까워진 것은 요 근래였지만, 미카는 그녀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여러모로 학원에서 유명 인사였으니까. 미카 또한 여러 의미로 학원의 유명 인사였지만, 그거야 보통과 학생들 사이에서였고, 아이돌과 안에서는 제 존재가 그렇게까지 유별나거나 특출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저보다 별난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것이 이 학원의 아이돌과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돌과에서도 단연 특출나게 눈에 띄는 것이 그녀, 안즈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딱히 미카와 안즈에게는 연이 없었다. 같은 반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녀가 메인으로 프로듀스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친구들이 속해 있는 유닛이었다. 트릭, 스타였던가…. 그녀는 어느 쪽이냐 물으면 '빛'에 가까웠기 때문에 미카는 그녀가 그 유닛을 프로듀스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저가 속한 유닛과 그녀는 상성이 맞지 않는다. 하고 마음 속 어느 곳에서부턴가 어렴풋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예쁜, 눈이네요."
그랬기에, 저가 속한 유닛의 의상을 만드는 것을 돕겠다느니, 무대의 연출을 돕겠다느니, 하는 의견을 내보였을 때, 미카는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그 스승이 그것을 허락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게다가 말 수가 적고, 자기 표현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이리 생각하는 것을 툭. 툭. 잘도 입 밖으로 낼 수 있는지. 미카를 처음 본 안즈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눈이 예쁘다'고. 미카는 뜨거워지는 제 귓가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고개만 푹 숙이고는, '그, 근가…. 내는, 잘, 모르, 겠….' 형편 없는 목소리로 말을 흐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안즈는 구김살 없는 미소를 내보이며, '거짓말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안다. 니는 거짓말 같은 걸 할 사람도, 거짓말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제대로 말을 섞어본 건 그 날이 처음이었지만, 미카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솔직하고, 바르고, 올곧아.
하지만 미카가 그 이상을 알 수 있을리 만무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제 앞에서 저를 보며 얘기하는 그녀는 미카에게 있어 그저 한 없이 밝게 빛나는 별이었으니까. 그 별빛이 미카에게 닿았을 때, 이미 그 빛은 별이 제 몸을 다 태우고 내는 마지막 빛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
카게히라 미카는 깨닫지 못했지만, 안즈가 그가 속한 발키리의 뒷바라지를 하는 그 시기 동안 그는 안즈와 꽤 사이가 깊어져 있었다. 물론 그것이 연애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깊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미카는 기뻤다. 스승님 이외의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스승님이 아닌 누군가와 돈독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예상 외로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안정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카는 그 시기 동안,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 가벼워져 있었다.
안즈를 만나기 위해, 자주 자신의 교실을 떠나, 안즈가 속해 있는 옆 교실로 얼굴을 비추는 일도 많아졌다. 그로 인하여 세간에서는 둘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는 듯 하였지만,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그 모양새가 연인의 모양새는 전혀 아니었기에 소문은 곧 사그라들었다.
거의 쉬는 시간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타학급에 얼굴을 비추는 그의 존재가 귀찮을 법도 하련만. 안즈는 언제나 시종일관 그에게 처음처럼 상냥했다. 트릭스타의 멤버들도 기함을 할 정도로, 멤버 중에 가장 솔직하고 거리낌 없이 말을 내뱉는 스바루가 '당췌 안즈가 누구 프로듀서인지 모르겠다'라는 볼멘 소리를 내뱉었지만, 안즈는 그 소리에도 그저 미지근한 미소로만 답할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미카는 안즈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쉬는 시간이 되면 안즈의 자리로 찾아와 별 다른 할 말이 없어도 그 옆을 지키고 앉아 고개를 까딱이며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게 다 였기 때문에 그저 조금 안즈를 귀찮게 하는 정도- 였다. 미카가 그것을 '상대에게 있어 귀찮은 행동'이라고 인식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
카게히라 미카는 수예부에 들어있었다. 그의 스승님인 이츠키 슈가 수예부의 부장이었기 때문에 그가 수예부에 입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조용한 부실. 수예부의 또 다른 부원인 츠무기는 오늘 아마 유닛 활동이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시끄럽거나 난잡한 것을 싫어하는 스승님의 성격 상, 부활동은 언제나 늘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부활동이라해도 거창한 건 없었지만.
다만 최근에 조금 달라진 것은, 수예부에 출석 도장을 찍는 것이 한 명 더 늘었다는 것 정도였다.
"참말로 니가 만든기가?"
안즈가 내놓은 인형 옷은 마치 유명 샵에서 내놓은 컬렉션과도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역작이었다. 미카는 멍하니 그것을 받아들고 이리 저리 다각도로 기울여가며 안즈가 완성해 온 작품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인데, 이런 솜씨라니. 꿀꺽. 미카는 슈가 앉아있는 자리를 흘끗 바라보았다. 바느질을 하는 데에 집중한 탓에 안즈와 미카에게는 일절 관심도 주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서, 미카는 저도 모르게 휴- 한숨을 내쉬었다.
제 실력은 누구보다도 저가 잘 알았다. 많이 나아졌다곤 해도, 아직 스승님인 슈가 보기엔 형편이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안즈는 저와 같은 나이면서도 실력은 저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생각해보면 주위의 다른 유닛들을 도와주며 의상 등을 만들어내는 수준이 프로의 뺨을 쳤던 것 같았다. 다른 유닛들에 별 다른 관심이 없어서 잘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응, 미카 군이나, 슈, 선배 같이 잘은 못하지만."
안즈는 조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나즈막이 대답했다. '아아, 하얀 거짓부렁이란 건 저런 걸 보고 하는 말일기다.' 미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학급에서 미카와 그나마 친하다 볼 수 있는 아라시가 봐준다한들, 차마 미카에게 '바느질을 잘한다'라고는 못 해줄 터이다.
"아, 아니, 그, 음, 뭐, 내, 내를 따라오려면, 아, 아직 하~안참 멀었지만서도!"
그러나 미카는 자신을 추켜세워주는 안즈의 말에 괜히 허세라는 것을 부려보고 싶어 저도 모르게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카게히라."
"합!"
물론 바로 슈의 가슴 깊숙히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에 놀라 급하게 제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안즈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행복하게, 웃는 표정이었던가.
아, 이제와 생각허면, 그건 분명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었을기다.
*
카게히라 미카는 그것이, 그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 향하는 것이 제 자신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 같으면 웃기지도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 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그녀는 미카와 함께하고, 얼굴을 마주치고, 말을 섞었으니까. 아무리 제 자신이라도 오해할 법한 행동들이었다.
그렇기에 일순 그 둘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나돌았던 것이다.
물론 제3자가 보기에 그것은 단순히 애정에 목마른 어린아이가, 저에게 상냥하게 대해준 사람의 곁을 맴돌며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모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소문은 금방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런 것을 미카가 알고 있을리 만무했기 때문에, 그는 그녀와 자신의 마음이 같다고 생각했다.
스승님도 너무 좋아하지만, 그것은 동경에서 비롯된 사랑이었지, 서로의 왼쪽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고 싶은 사랑은 아니었다.
안즈에게로의 감정은, 어느 쪽이냐면 그래.
서로의 왼쪽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고 싶은 감정.
"미안, 오늘 일지 당번이었어서……."
그녀의 목소리에 퍼뜩, 미카는 정신을 차렸다. 지기 시작한 노을 빛이 들어오는 복도에 숨을 헐떡이는 그녀가 서 있었다. 으레 학교가 파하면, 자연스레 일찍 끝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둘 사이에서는 일과가 되었다. 미카는 살짝 상기된 볼을 한 안즈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니다, 개안타. 바로 부실 갈기가?"
"음, 그러게……."
안즈는 가방을 뒤적거려서 작은 다이어리를 꺼냈다. 그 다이어리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적혀 있었는데, 대충 그녀의 스케줄 표 같은 것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녀가 발키리를 돕기 전에는 이 유닛, 저 유닛에 불려다니며, 모든 일거리를 도맡았던 것을 미카는 기억했다. 저러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무심히 생각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발키리를 돕기 시작한 후로 그녀는 어째서인지, 다른 유닛에서의 권유를 모두 마다하고 있었다.
미카로써는 그녀를 발키리가 독점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마냥 즐거웠기 때문에 그것이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마음 어디선가 단정 짓고 있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행하는 데에 '이유'가 없을 리 없다. 그 어떤 작은 행동이라도 시시콜콜한 이유가 붙기 마련이다.
미카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깊게 생각하면 바로 자신과 안즈의 관계에 대한 본인의 결론에 모순이 드러날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 오늘 스승님 수예부에 못 나온다 했던 거 같은디, 뭐 들은 거 있나?"
"……에?"
안즈의 얼굴이 순간 사색이 되었던 것 같았다.
"어디 아프나?"
미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안즈는 어느 새 평소와 다름 없는 얼굴이 되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닐리가 없었을테지만, 미카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흐응…… 그나. 컨디션 관리 단디 해라."
본 것을 못 본 체 하는 것은, 특기였으니까.
카게히라 미카는 아무렇지 않게 본 것을 못 본 척, 쉬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못 본 체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쥐어진 주먹에 들어간 힘을, 미카는 한 동안 풀 수 없었다.
-크르릉.
"아, 오늘… 비 온다고 했던가?"
안즈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들어 바라본 복도 창 밖의 하늘엔, 어느 새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
이츠키 슈가 쓰러졌다.
학교가 끝난 후 수예부 활동 중이던 미카를 급하게 찾아 온 선생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연습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이 되었다고. -콰당! 미카의 앞자리에 앉아 발키리의 무대 의상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던 안즈가 선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심하게 동요된 얼굴이, 사색이 된 얼굴이, 방금 전 노을 지던 복도를 생각나게 했다. 저보다도 먼저 달려나가, 누가봐도 심히 동요하며 떨리는 손으로 선생을 부여잡고 소리치는 안즈를, 미카는 말릴 수가 없었다.
처음보는 얼굴, 처음듣는 목소리,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여지껏 무시하고 있었던, 모른 척 넘어갔었던 것들이 머리 속을 뒤엎는 것만 같았다. 사고가 정지하고, 시야가 희멀겋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 했던 것, 외면 했던 것, 자만했던 것, 수많은 감정들이 쓰나미가 되어 몰려와 파도에 맞은 평안을 닥치는 대로 갈기 갈기 찢어놓았다. 몸은 물에 젖은 솜 처럼 무거워지고, 머리는 둔해져갔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휘청 거리는 몸짓으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움직였다. 한 발자국만 헛딛으면 금새 무기력의 늪으로 떨어질 것만 같이 불안한 발걸음이었지만, 제 사정을 봐주는 현실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말이 나오는 족족 턱. 턱. 목구멍 앞에서 막혔다. 꿀꺽. 꿀꺽. 몇 번이나 마른 침을 삼키고서 겨우 입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스, 스승님, 어딘데예? 지금 어디 있는데예?"
*
카게히라 미카는 눈을 감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안즈는 끝까지 제 작은 양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카는 다시 눈을 감았다. 현실에 눈을 두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이 쓰러졌다는 현실에서도, 그리고─.
-끼이익.
버스는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 미카는 여전히 제 손에 고개를 파묻고서는, 이따금씩 어깨를 떠는 안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를 살짝 안아 힘을 주자, 그녀는 천천히 저에게 몸을 맡긴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버스에서 내려, 학교를 나올 적 선생이 전해준 빨간 우산을 펼쳤다.
둘이 들어가기엔 살짝 작은 우산이었기에 미카는 그녀 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한 쪽 어깨가 다 젖어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 걸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찐득, 찐득, 길바닥에 달라 붙는 다리를 억지로 떼어내가며 걸음을 옮겼다. 그건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넓은 주차장을 지나, 새하얗고 커다란 건물 앞에 서자 갑작스런 현실감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건 현실이고, 꿈이 아닌기다. 언제나 내는, 불행한 쪽인기라. 행복이니 뭐니, 내한테는 자격이 없는기라.
힘겹게 병원 로비로 몸을 구겨넣으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누적된 피로와 영양실조 등 갖가지 원인들이 합쳐진 것이 쓰러진 이유라고 했다. 안즈는 하염없이 그의 옆에서 울고만 있었다. 병상 위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미카가 여즉 알고 있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느 새 이렇게 마른걸까. 어느 새 이렇게 볼품 없어진 걸까. 안즈는 울며, 무어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기 때문이다─' 라고 중얼 거리는 것 같았다.
미카는 어렴풋이 그 둘이 어떤 관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냥 단순한 선후배 사이에 이럴 수 있을리 없었다. 쓰러져서 의식 불명, 모두가 걱정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오열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단순한 선후배 사이에서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스승님이 쓰러진 게 왜 니 탓인데? 물어볼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미카는 그런 악인이 되지 못했다. 제 힘으로 진실과 마주할 용기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아니면 질 나쁜 악몽이래도 좋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자만 했던 것? 제깟게 행복해져 보겠다고 생각했던 것? 왜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스승님일까. 내한테 승산이 있을리가 없잖나… 이라믄….
"이, 이츠키!"
"……나즈나 형?"
"카, 카게히라…… 어? 아, 너도 있었구나. 안… 즈."
병실로 슈를 부르며 뛰쳐 들어온 것은 구 발키리의 멤버였던 니토 나즈나였다. 나즈나는 슈의 옆에서 여전히 울고 있는 안즈를 바라보고서는, 한숨을 몰아쉬며 숨을 고르었다.
아마 버스 정류장부터 병실까지 전속력으로 뛰어온 것이 틀림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슈를 생각해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앙심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미카를 푹. 푹. 찔러댔다. 하지만 애시당초 나즈나가 발키리를 탈퇴하지 않았다면, 슈가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두 가지의 마음이 서로 뒤엉켜서, 볼품없는 색으로 변하는 것만 같았다.
나즈나를 보면, 늘 이렇게 자신의 못난 부분이 떠오르고 만다. 이래서 내는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실패작인기라…. 미카는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꾸욱. 눌렀다. 제 못난 마음이 행여 삐져나와 모두의 눈에 뜨일까 걱정이 되었다.
"흑, 윽……."
"……그만 울어. 이츠키가 이렇게 된 게, 네 탓은 아니야. 너도 알고 있잖아?"
"흐윽…."
나즈나는 천천히 안즈의 옆으로 다가가, 슈의 침대 옆에 놓여진 간의 의자에 앉아 울고 있는 안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도닥였다. 그가 다독여줌에따라 천천히였지만, 확실히 안즈는 안정되어가는 것 처럼 보였다.
이 봐라. 나즈나 형은 언제나 글타. 내가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내삔다. 그래서, 내는…….
"의사 선생님에게서 얘기는 들었어?"
"에, 아, 으, 응. 간단하게나마, 들었다."
"그래……. 이츠키의 부모님은?"
"연락, 은 갔을 거 같은디…… 내도, 딱히, 그 분들헌티 연락 같은 거, 주고 받고 그라질 않아서……."
나즈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작게나마 떨리는 안즈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는 그랬다. 가장 작고 여렸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도 올곧고, 진취적이었다. 그 눈은 언제나 미래를 보았고, 도전했고, 실패해도, 땅을 기더라도, 굴복하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서, 그 작은 몸으로 맞서는.
글타. 나즈나 형은 내한티… 언제나… 동경하는 영웅이었는디.
.
.
..
...
"카게히라,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할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 건지, 미카는 저를 부르는 나즈나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뜨였다. 이미 병실 바깥은 먹구름이 끼어 있다고는 하나, 노을이 지던 저녁시간과는 다르게 확연히 어두워져 있었다. 나즈나의 뒤 쪽으로는 간이 침대에 몸을 뉘이고 있는 안즈가 보였다. 울다 지쳐 잠이 든 것 같았다. 조용해진 병실은 삑. 삑. 용도를 알 수 없는 의료 기구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정적을 깨고 있었다.
미카는 멍하니 병실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의자와 맞대어 있던 엉덩이 살 부분이 찐덕하게 눌러 앉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찝찝하다. 예전의 감정들이 엉키고 섥혀 제 다리에 진득허니 달라 붙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
병원 밖은 잠시 비가 그친 것 같았지만, 이렇게 어두워진 하늘에도 희끗, 희끗 보이는 먹구름들은 곧 다시 비를 내릴 것이란 걸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많이 늦은걸까. 병원 로비 접수처에는 간호사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병원 로비에서 TV를 본다던가 하릴 없이 병실서 나와 앉아있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병원 로비에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걸터 앉은 미카에게 나즈나는 자판기에서 꺼내 온 음료수를 건냈다. 받을까, 말까, 망설여졌지만 결국 미카는 그 음료수를 받아들였다.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주고 받지 못하는 사이가 된 것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 모든 것을 나즈나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제 모습에, 미카는 한층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카게히라, 혹시 어디까지 알고 있어?"
"……뭔 말이고."
"그 애랑, 이츠키, 사이 말이야."
쿵.
쿵.
쿵.
미카는 저도 모르게 가슴 언저리를 지긋이 누르며 나즈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여전히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서, 미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피해버렸다.
"뭔, 소리고. 모르것다. 내는, 아무것도……."
"카게히라."
"……내는 모르것다고 아무것도!!"
-퍽─!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난 미카는 차마 다 마시지 못한 채 제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를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허억. 허억.
거칠게 호흡하며, 찡그린 눈으로 나즈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올곧는 눈빛으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자신을 똑바로 마주한다. 이래서, 싫은기다. 이래서.
저 올곧은 눈으로,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까지, 샅샅히, 다, 내비추게 만든다.
나즈나는 얕게 숨을 몰아쉬고는, 그 작은 입을 천천히 움직였다.
"싫다……."
"카게히라, 그 둘은─."
"싫다꼬, 제발…… 그만 해라, 나즈나…… 형……."
"들어야 해, 카게히라."
"싫, 다…… 내는…… 윽, 흐윽……."
알고 싶은 것만 알고, 알기 싫은 것은 모른 체 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꿈 같은 세상일까. 하지만 현실은 잔혹하기만 해서, 알고 싶지 않은 진실에 상처 입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가고 있으니, 우리는 살아 나가야 한다. 이 지독한 현실을 살아 나가야만 하니까. 한 없이 걱정스러운, 사랑스러웠던 나의 동생. 언젠가는 그가 없어도 네 힘으로 이 길을 걸어가야만 해.
그러니, 나는 너에게 말해야 해.
그게 비록, 너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라 해도.
*
"……아."
얼마나 잠 들어 있었던 걸까. 안즈는 누군가의 손길에 눈을 떴다.
"……인났네."
"……미카?"
"응, 내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그의 나긋하고 다정한 목소리.
그러나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안즈는 제대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두운 곳. -삑. -삑.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기계음 소리. 여기는 어디지? 이름도 모를 약품 같은 것의 냄새가 난다. 답답한 공기. ─아.
"아, 슈, 선배……!"
안즈는 퍼뜩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카의 팔이 제 몸을 안고 있는 채였기 때문에 생각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미, 카?"
"내, 다 알아부렀데이. ……다 알아부렀어. 우야노? 우예 해야 하노?"
"미카, 무슨 소리…… 인지, 나 잘 모르겠─."
"니랑, 스승님이랑, 내 다 안다. 이제."
"……."
"나즈나 형이, 다 얘기해줬다. 이제, 비밀 같은 거, 없는기라. 숨기지 않아도, 되는 기다."
"미, 카."
미카는 손을 뻗어, 안즈의 얼굴을 붙잡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 끝으로, 그가 지금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지 느껴져왔다. 안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미카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모든 걸 알았다. 너와 그의 관계를. 그 말이 뜻하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안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한들, 변명처럼 들릴 뿐이었고, 실제로 변명이었다.
나만을 생각하고 네 옆에 있었다.
실은, 나와 그를 생각하고 네 옆에 있었다.
그의 옆에 있으려면, 네 옆에 있어야 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그가 받은 상처들은 알고 있었다. 모두 샅샅이, 낱낱이, 슈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은 작년부터 이츠키 슈의 연인이었으니까. 그는 미카를 아꼈다. 자신은 모르더라도, 제3자인 안즈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 그의 옆에 설 수 없게 되자, 미카의 옆에 서는 것을 선택했다.
안즈가 미카의 옆에 섰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미카를 상처 입힐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 이츠키 슈는 안즈를 말리지도, 미카에게 그녀와 거리를 두라며 타박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둘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어쩌면, 이 셋이서 평화롭게 해 갈 수 있을거라고 착각했을 지도 모른다. 너무 지쳐서, 저도 모르게 그런 현실을 꿈꾸고 희망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의 그는, 처음 만났을 적의 가시돋힌 모습도, 절망하고 망가졌을 적의 볼품 없는 모습도 아닌, 인자하게 미소짓는 자애의 신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런 것, 말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상처 입을거야, 미카.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이미 그는 모든 걸 안 상황에서 자신으로 인해 상처 입었다. 자신이 입을 여는 행위는, 어느 쪽이든 확인 사살이 될 뿐이었다.
"와, 진작 말 안했나. 그라믄, 내도, 우쭐하지 않았을텐데……"
"……."
"그냥, 스승님이 좋타꼬, 말을 혔으면, 와, 말 안 했는데?"
나도, 알고 싶어.
안즈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투둑.
-투둑.
다시금 하늘에서 내려온 빗방울이 병실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팡.
미카는 들어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병원 문을 열고는 우산을 펼쳤다. 안즈의 손에 우산을 쥐어주고는, 미카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안즈는 그런 그를, 더욱 천천히 뒤따라나섰다.
"……미카."
그녀가 그를 불러세웠고, 그는 멈춰섰다. -솨아아. 멈춰 선 미카에게 다가온 안즈는 그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이미 젖을대로 젖은 몸이었는데, 우산 같은 거 필요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에게 와 호의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미카는 힘 없이 미소지었다.
"니는, 천성이 착해가꼬…… 우얄래?"
"……."
"참말로 신기하다. 그 스승님이랑 우예 사랑했는데? 니 그 착해빠진 성격으로, 앞으로 그 사람 우예 사랑할낀데?"
성격 나쁜 물음이었다. 알고 있었다. 안즈는 힘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떨리는 어깨가 눈에 들어왔지만,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스러워보이다가도, 그렇게 미워보일 수가 없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니가 스승님이랑? 그게 말이나 되나? 내는 안다. 니는 버려진기다. 버려졌는데, 와 다시 붙는데? 니는 자존심도 없나? 실패작이믄, 실패작 답게 살아라! 문디 가스나야!"
그만.
"아이다. 아이지. 내 말이 헛나왔다. 착해 빠진 성격은 아이지, 니가 착했으믄 내한테 그랬겠나? 어? 내 가지고 장난 쳤겠나! 니, 니가 좋아하는 사람 옆에 슬라꼬, 내 이용했겐나! 아이다! 아이라꼬!!"
그만. 그만.
그녀의 손에서 힘 없이 우산이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녀는 제 자그마한 손에 다시금 제 얼굴을 파묻었다.
─솨아아.
─장대비가 쏟아지는 만큼, 그렇게 질릴 때 까지 미카는 그녀에게 폭언을 쏟아 부었다.
미카는 알고 있었다. 이런 때에는, 악역을 떠맡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
그러니까 내는, 니한테 있어 악역이 될기다.
"미안, 미카……. 미, 안……."
"니, 내가, 내가, 니 우는 거 볼라꼬. 니 그렇게 내한테 미안타 하는 거 볼라꼬, 내, 니한테 이런다 생각하나? 아이다. 아이라꼬. 내는, 내는……."
"미안…… 미안……."
"내, 니한테, 그런 말, 들을라꼬…… 흐윽."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미안, 미안…."
몇 번이고 같은 말만 중얼거리는 안즈를 바라보며, 미카는 천천히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제, 모두 다.
놓아줘야 할 때가 되었다.
천천히, 손을 들었다.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억지로, 지었다.
달싹거리는 입을, 힘겹게 열어, 구겨진 목소리를 낸다.
"안녕, 안즈─."
손 흔드는 건 결별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었으니 보내는 거야
하주자 / 꽃비* * *
미카안즈라고 한 거 너무 양심 없어보인다.....
쓰고 싶은 거나 표현하고 싶은 거 더 많았는데 역량 부족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아마 모두 실제로는 좀 더 안타까운 모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