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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야치] LIAR야치른(谷地受け)/니시야치 2016. 2. 1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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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코 상!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커다란 목소리가, 쩌렁쩌렁 체육관을 울린다. 여느 때와 같이, 돌아오는 건 무시. 그리고 주변인들의 웃음. 그리고, ─그녀의 웃음.
아직 배구부에 완전히 녹아들지는 못해서 그녀의 주위는 살짝 붕 떠 보인다. 색채라든지 공기라든지가. 그래서, 뭔가 그녀를 보고 있으면 익숙해진 체육관일텐데도, 익숙해진 부활동일텐데도, 무언가가 다르다.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색다르다'는 것은 곧 '자극'이고, '자극'은 '중독'되어버려서, 그는 정신차리고보면 언제나 그녀의 모습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얏쨩, 오늘도 수고했어."
"앗, 네! 수고하셨습니다!"
"히토카 쨩, 고생 많았어."
"아, 고생 많으셨어요! 시미즈 선배!"
"야치 상, 옷 갈아입고 올테니까, 체육관 앞에서 기다려!"
"아, 응! 히나타!"
모두가 새로운 부원을 위해 신경을 써 주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들 사이에 끼어 들려고 하지 않는다. 묵묵히 체육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배구공들을 주워 들어, 하나. 하나. 천천히 정리를 해나갈 뿐. 늘 부원들의 중심에서 큰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끄는 그 답지 않은 모습에, 그의 친구인 타나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묻는다.
"노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딱히. 그나저나 류, 너도 놀지 말고 청소 하라고~! 오늘은 2학년들이 담당이란 거 잊었냐!"
"미, 미안!"
아무렇지 않은 척,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며 그를 타박하자 타나카는 입을 다물고, 허둥지둥 창고로 가 밀대를 꺼내 나왔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서는, 다시 바닥에 구르고 있는 공을 주워 든다. 그러나 또래보다도, 심지어 연하의 남학생들보다도 체구가 작은 그로써는 조금 무리인 양이었는지, 그만 몇 개인가의 공이 그의 품을 떠나 통. 통. 통. 바닥을 구른다. -쯧. 짧게 혀를 차며 힘겹게 바닥을 구르는 공을 잡기 위해 몸을 굽힌 순간,
"……아, 도와 드릴게요!"
"……!"
연한 금발이 찰랑 거리며, 그의 시선에 들어온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눈 앞에 그녀의 얼굴이 한가득 담긴다. 살짝 어색하게 웃는 입꼬리가, 살짝 긴장한 듯 휘어지는 눈꼬리가, 뒤 이어 눈에 들어오고, 살짝 벌려진 분홍빛의 도톰한 입술까지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서,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 탓에 겨우 품고 있던 공의 반 이상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와르르.
"…앗!"
"…으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가 괜히 카라스노의 수호신이란 이명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 빠른 순간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와르르 쏟아지는 배구공들 사이에서 그녀를 낚아채 감싸 안은 채, 자신이 쿠션이 되어 체육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딱히 그렇게까지 몸을 던질 정도로 배구공이 위험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치기 전에, 이미 손은 그녀의 팔을 끌고 있었다.
"아, 으…."
"무슨 일이야!"
"야, 얏쨩, 괜찮아?"
"노야! 머리 맞은 거 아니야?"
넘어지면서 머리에 몇 개인가의 공을 맞은 기분이었다. 뒷통수가 살짝 아릿하고, 눈 앞이 뿌애져 정신이 없을 즘, 품 속에서 나는 앓는 소리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미 탈의실로 돌아가지 않았던 몇 몇 부원이나, 2학년들이 그와 그녀를 둘러 싸고 상태를 묻고 있었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품 안의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히, 히토카, 괘, 괜찮아?"
"앗, 네에…. 괜찮아요, 죄,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소리 내어 불러 보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때를 가리지 않고 붉어지려고 하는 볼을 식히기 위해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모두가 '노야, 머리 다친 거 아니야?!'라며 걱정을 했지만…. 그는 생각했다.
다친 건 머리가 아니라, 심장인 것 같다고.
*
의외로 자신의 감정에 그는 쉽게 눈치 챘다. 눈치 채지 못하는 게 바보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바라볼 적 마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 두근. 심박수가 올라간다. 그녀가 조금만 제 옆에 가까이 와도 얼굴이 타는 것 마냥 뜨거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다. 이 정도만 서술해도 답은 나온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요즈음에는 시선이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노골적으로 그녀를 피해버리곤 해 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그 날 이후 사실 그녀와의 관계는 전보다 더욱 소원해졌다.
애시당초 소원해질만한 관계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애매한 것으로….
그러나 딱히 슬프다거나 그런 감정이 솟아 나지는 않았다. 조금, 아주 조금 서운한 정도. 하지만 자신이 먼저 다가갈 용기는 없었다. 시미즈에게 말을 걸 적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류의 감정이었다. 그저 '동경'과 진짜 '좋아한다'라는 감정은 하늘과 땅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는 더 이상 개인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거나, 말을 걸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시미즈에게 더욱 과장된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하거나, 그라비아 아이돌 잡지를 잔뜩 들고 다니기도 했다. 모두들 조그마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긁어 부스럼이라고 생각했는 지 딱히 면대면으로 의의를 제기하거나, '노야, 요즘 이상하네?'라고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전혀 의외인, 솔직히 자신의 그런 모습을 무시해줬으면 했던 그녀가, 자신의 변화를 물고 늘어졌다.
"…노야 선배, 뭔가, 요즘 이상하시네요."
"…아?"
되도록이면 둘만 있는 시간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일이 정해 놓은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시미즈가 잠시 자리를 비운지라, 어쩌다보니 드링크 보틀을 세척하는 그녀를 돕게 되었다. 그 날 이후, 처음으로 단 둘이서만 있게 된 시간이, 불편하면서도 간질간질하게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만. 그만.' 계속 마음속으로 대뇌이며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가슴 언저리를 꾸욱. 누른다. '그만 두근거리라고, 들릴 거 같잖아.' 두근. 두근.
혹여 그녀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 건 아닐까 걱정하여, 일부러 수돗물을 세게 틀어 시끄러운 잡음을 만들어낸다. 괜히, 뽀득-. 뽀득-. 소리를 내어 드링크 보틀을 씻는다. 그렇게 물 소리와, 보틀을 씻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던 와중에, 세 번째인가의 보틀을 세척하던 그녀가 입을 열고는 한 말이 저것이었다.
'뭔가, 요즘 이상하시네요.'
그 말이 묘하게 쿡. 쿡. 박혀와서, 그는 보틀을 씻던 손을 멈칫.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녀는, 제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담담히 보틀을 씻어내고 있었다.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사뭇, 진지하고 침착한 모습에, 꿀꺽. 침을 삼켰다.
"앗! 죄, 죄송해요! 건방진 소리였어요!"
하지만 곧 평소와 같은 분위기의 그녀로 돌아와서, 당황한 표정으로 어수선하게 이 쪽을 힐끔거리며, 자신의 눈치를 보며 사과했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어서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아, 아니. 별로. 그렇지 않아.' 라고 대답한다. 조금 목소리가 떨린 걸 눈치챘으려나. 뽀득-. 뽀득-. 보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요즈음, 조금 기운이 없으신 것 같아서…. 무리해서, 밝아 보이시려 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 되서요…."
툭.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진 말이, 퍽. 하고 둔탁하게 뒷통수를 가격한 것만 같은 느낌에, 보틀을 씻던 손이 다시금 멈추었다. 천천히 돌려진 시선에 들어차는 것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감정이 격양되는 것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얼굴에 몰려있던 열이, 눈가 쪽으로 모이는 것만 같았다. '안 돼. 지금은 안 돼.' -홱,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큰 소리를 냈다.
"아아, 벼─, 별 거 아닌데─. 걱정 끼쳤다면 미안! 그, 시, 신 개인기가 자, 잘 안 되어서…."
제발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눈치채질 못하길 바라며, 고개를 떨군 채 어수룩한 연기를 한다. 그녀를 좋아한다고 깨달았을 적부터, 줄곧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쳐왔으니까, 거짓말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나 보다. 그녀가 툭.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가 자신의 감정의 수도꼭지를 돌려 버린다.
"─노야, 선배?"
툭. 투둑.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시야가 뿌얘서, 그녀가 무슨 표정을 하는 지 그는 잘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이 동그란 자국을 만들어 낸다. '─괜찮아. 괜찮아.' 몇 번이고 되내이며, 자신을 달래려 한다. 수도꼭지를 잠그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헛돈다. 갑작스런 그의 눈물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는 그녀에게 괜찮단 말 한 마디도 꺼낼 수가 없다. 떨리는 목소리가 목 구멍에서 몇 번이고 헛돈다.
제발.
잠겨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헛돈다.
*
야치 히토카. 그가 동경해 마지않는 선배인 시미즈 키요코가 매니저 후보로 데려 온, 신규 부원. 시미즈의 졸업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지만 별 실감을 못하고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이렇게 실질적인 현상이 눈 앞에 놓여지니, 문득 3학년들의 졸업이 체감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사람'이라는 생각 뿐으로, 의외로 낯을 가리게 되었다. 동성이라면 몰라도, 처음 보는 이성은 아무리 그 라고 해도 역시 조금 부담스러웠다.
"야, 야치 히토카 입니다! 자, 잘 부탁 드립니다!"
첫 인상은, 참 왜소한 아이. 자신도 그다지 큰 키는 아니었지만, 이런 자신보다도 더욱 조그마한 여자아이는 은근히 찾기 어려웠다. 나중에 언뜻 들은 이야기로는 키가 140대라고 했다. '우와, 작아….' 우연히 그녀의 곁에 설 때면, 그녀의 작은 키가 더욱 실감이 났다. 왜소한 체구 덕택에 작은 키가 더욱 작아 보였다. 거기에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늘 몸을 움츠리고 있어서, 무심코 초등학교 때 기르던 골든 햄스터가 생각 나 버렸다.
"풉."
"에? 무, 무슨 일 있으신가요?"
저도 모르게 웃어 버린 그에게, 움찔! 하고 반응하며, 힐끗힐끗 눈치를 살피는 모습도 예전에 키우던 햄스터를 똑 닮았다. 그는 손을 휘저으며,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못내 수긍하고서는 다시 시미즈의 옆에서 이것 저것 배구에 대한 상식들을 가르침 받는다. 준비성이 철저하게도 한 손에는 펜, 한 손에는 메모지까지 취하고서 새로운 단어가 나올적마다 꼼꼼히 메모를 해 나간다.
'요즘 보기 드문 성실한 타입이네. 하긴 5반이면 진학반이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코치의 호령에 코트로 불려 나갔다. ─힐끗. 눈동자만 굴려 슬쩍 바라본 그녀는, 시미즈와 함께 웃음을 짓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키요코 상, 아름다워!'라며 호들갑을 떨고는 코치와 다이치에게 연습에 집중하라며 혼쭐이 났을 터지만, 그 날은 무언가 달랐다. 시미즈보다도, 그녀의 옆에 선 어찌보면 평범한 인상의 왜소한 여자아이가 더 제 시선을 잡아 끌었다.
딱히 입이 떡 벌어지는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것도 아니고, 이목구비가 매력적인 것도 아닐 터인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미소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순간부터였을까.
그녀의 주위가 붕 떠오른 것은.
Written BY. WOOUL